시나위

 

시나위는 간단히 말하자면 남도의 무악인데,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신방곡·심방곡이라고도 한다. 한강 이남과 태백산맥 서쪽지방의 무속음악에서 유래한 기악곡으로서 특히 호남지방에서 많이 부른다. 어원은, 신라 때 노래를 뜻하던 사뇌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하며, 외래 음악인 당악, 즉 정악에 대하여 토속음악인 향악으로 해석하여 당악보다 격이 떨어지는 음악의 일반 명칭으로 쓰이기 시작하였다는 설도 있다.

심방곡은 당초 무당의 음악이라는 뜻으로 옛 문헌에는 신방곡으로도 나오며, 육자배기토리로 된 허튼가락의 기악곡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이처럼 시나위의 역사적 전개 과정은 확실하지 않으며, 다만 무속음악에서 영혼을 달래는 의식으로부터 출발하였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옛날에는 삼현육각 편성으로 시나위를 연주하였으나 지금은 가야금·거문고·해금 등의 현악기가 함께 연주한다. 연주 형태는 무당이 육자배기토리로 된 무가를 부르면 모든 악기는 저마다 허튼가락을 무가의 대선율로 연주한다.

이 때 무가의 선율과는 다른 선율을 연주함으로써 다성적 효과를 나타낸다. 이같은 선율진행과 장단은 연주자들의 현장 호흡으로 맞추어지는 즉흥음악이므로 고도의 음악성과 연주기술을 요한다. 육자배기토리로 된 허튼가락은 무의식이 아닌 민속음악에도 쓰이는데 이 경우도 시나위라고 부른다. 시나위는 조선 후기에 산조·판소리·잡가 등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판소리에는 시나위의 더늠이 간혹 보인다. 최근에는 일반인에 의한 시나위 연주는 거의 없고, 다만 살풀이춤의 반주나 순음악의 합주로 연주되고 있으며, 장단조직은 산조와 같다.

 

 

 

산조


1)산조의 판소리 기원설


장고나 북의 반주에 맞추어 연주하는 기악독주곡인 산조가 만들어진 시기는 대략 조선의 고종말엽인 19세기 말이다. 이 시기는 이미 신분제 등 봉건사회의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사회를 열망하는 욕구가 곳곳에서 분출하던 사회적 전환기이다. 이 당시 서민사회에는 이미 판소리가 등장하여 조선후기의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民'의 정서로 표현하면서 민으로부터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키며 서민사회의 독창적인 예술양식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산조는 이러한 판소리의 영향을 받아을 것이다. 이를테면, 불려지는 노래는 모두 악기로 연주되고 악기로 반주되지 않은 노래가 거의 없는, 노래와 악기의 불가분의 역사에서 볼 때, 이 당시의 판소리를 자기화하려는 연주자들의 욕구는 쉽게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판소리의 가락을 기악곡화 시킨 것이 봉장취라고 한다. 다시 말해 소리없는 판소리가 산조인 셈이다. 그러나 판소리는 노래 일반의 형식과는 다르게 방대한 사설을 극적내용에 따라 노래하는 것이어서 그 음악 전체를 악기로 모사한다거나 구성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판소리는 그 연행방식 자체가 악기의 반주를 필요로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러한 것이 오히려 방해로 작용할 수 있는 연행적 특성 때문에 악기연주자들이 자연스럽게 판소리에 접근할 수 있는 일반적인 통로는 막혀져 있는 셈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산조가 형성되던 초기의 형태는 판소리의 특징적인 선율형태를 부분적으로 또는 즉흥적으로 모사하는 형식이었을 것으로 보이며,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판소리의 표현형식을 선택적으로 또는 기악적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의 과정을 거친 후 비로소 오늘 같은 하나의 독창적인 음악양식으로 발전하였다.


2) 산조의 시나위 기원설


시나위는 주로 전라도와 충청도의 단골무당의 굿판에서 여러 악기로 합주되는 음악의 총칭으로 사용된다. 굿판 구성의 악기는 대금·해금·피리·장고·징이 주로 편성되며, 가야금과 아쟁·태평소 등의 악기가 첨가된다. 여기에 굿의 연행형태가 빠지고 순수 기악곡으로 연주되면 이를 시나위라고 한다. 그리고 합주의 형태가 아닌 독주의 형태를 띠면 산조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즉 시나위의 독주곡이 산조인 셈이다. 다시말해 무당의 굿판에서 시나위합주를 연주했던 무부(巫夫)로서의 광대들이 자기 악기로 독주했을 허튼가락이 산조의 원형과 역사적으로 관련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대금산조를 젓대시나위 또는 해금산조를 해금시나위로 부르는 명칭이나 산조를 연주하는 대금을 시나위젓대라고 하는 명칭이 우선 그러한 추정을 자아내게 만들어주는 단서이다. 한편, 어느 한 장단에 맞추어 즉흥적으로 가락을 엮어나가는 시나위의 즉흥연주기법이 과거 산조명인들의 즉흥연주기법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점이 그러한 추정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하겠다. 따라서 산조의 원형은 19세기 이전부터 체계없이 시나위를 바탕으로 단편적으로 악기연주자들에 의해서 연주되었을 것이다.
요컨대, 역사적인 견지에서 산조의 유래는 시나위 합주에서 연주되었던 가락이나 판소리의 가락을 흉내내었던 봉장취 같은 가락, 즉 체계없는 단편적인 허튼가락에서 찾아져야 마땅하다고 본다. 체계없는 단편적인 허튼가락이 19세기 이전부터 재미로 조금식 연주되었던 것이 봉장취 같은 산조의 원형이라고 하겠고 이러한 산조의 원형이 후에 음악적으로 체계화되어 하나의 독립된 기악독주곡으로 발전된 것이 산조이다.


3) 산조음악의 특징


1 산조는 남도지역의 시나위와 판소리의 선율적 특성을 각 악기의 특성에 맞도록 재 구성한 기악독주 형식의 음악이다. 개인의 연주기량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음악장르이다.
2 장단은 느린 진양조에서 시작하여 중모리 중중몰이, 자진몰이로 점차 빠르게 진행하며, 가장빠른 장단인 휘모리(세산조시, 단모리) 장단으로 끝을 맺는다.
3 특히 가야금산조에서 휘모리 장단의 끝부분에서는 풀어주는 가락으로 연주한다.
4 즉흥성이 강한 음악으로 서양의 jazz에 비견되며, jazz보다는 형식성이 훨씬 뛰어나다.
5 더늠이라고하여 자신의 독특한 가락이나 연주법을 첨가시켜 새로운 유파를 형성하기도 한다.


4) 산조음악의 성장 발전


1가야금산조 : 가야금산조의 시조로 알려진 김창조(1865-1920)가 활약했던 19세기 말기와 20세기 초기에 한숙구와 박창옥이 전라도에서 활약했고, 충청도 지방에서는 이차수와 심창래가 활약했다고 한다. 현재 많이 연주되고 있는 가야금산조는 김죽파류·최옥산류·김병호류·강태홍류·박상근류·심상건류 등이다. 각 유파별 악장은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원래 가야금산조의 악장은 진양조·중모리·자진모리 이상의 셋 악장을 가지고 있는 차차로 그 음악의 속도가 빨라지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 가운데 중중모리와 엇모리 휘모리 단모리 세산조시 등의 악장과 가락을 넣으므로 자신만의 독특한 유파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이 산조가 살아있는 음악이며, 즉흥성이 강한 음악이라고 볼 수 있다.
2거문고산조 : 거문고산조는 백락준(白樂俊, 1884-1934)에 의하여 창시되었다고 하나 백락준은 그의 아버지 백선달로부터 구음으로 산조를 전수받았다고 하므로 후에 체계화 시킨듯하다. 백낙준의 문하에서 신쾌동(申快童, 1910-1978), 김종기, 박석기 세 사람이 거문고 산조를 전수하였고, 이들은 주로 일제시대에 활약하였다. 현행 거문고 산조는 신쾌동류, 한갑득류, 김윤덕류 이상 세 유파로 구분되어 있다.
3대금산조 : 젓대시나위로 흔히 불리는 대금산조는 박종기에 의해서 창시되었고 그의 산조는 한주환을 거쳐서 한범수에게 전승되었다. 그 이외 방용현이 서울지방에서 젓대시나위로 유명하였고 그의 산조는 김원식에게 전승되었다. 경상도지방의 강백천은 독특한 대금산조를 만들었고 이충선과 김광식도 가야금산조를 모방하여 대금산조를 만들었다고 한다.
4해금산조 : 구한말 지용구라는 해금연주자 명인에 의하여 창시되었으며, 오늘날과 같은 틀의 구성은 지영희와 한범수가 꼽힌다. 지영희류는 대금산조의 선율을 많이 본받았고, 특히 중중머리 부분에 익살끼있는 가락이 특징적이다. 한범수류는 부드럽고 유연한 진행을 보이며, 가야금의 선율을 많이 인용하였다고 한다.
산조의 미학
산조는 화음이나 다른 선율악기와의 협력을 일체 배제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음선으로 전개해 나가면서 한 음 한 음마다 독자적인 생명력을 중요시한다. 또한 가락을 죄었다가 풀었다가 하는 긴장과 이완의 적절한 대비와 '내고 달고 맺고 푸는' 한국음악의 전통적인 형식에 입각한 역동성은 듣는 사람을 산조 가락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산조의 또 하나의 매력 은 무한히 이어지는 변화에 있다. 산조는 재현이나 반복이 거의 없이 끝까지 새로운 변화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