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번 호에서는 아시아 무대예술산업의 중심인 일본 시장을 면밀히 조사, 분석해 보고 일본 공연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또 일본 공연 산업의 거대 공룡인 극단 시키가 일본 공연산업에 끼친 영향과 앞으로의 발전 전망에 관해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

 

 

I. 일본의 뮤지컬 시장

 

 

1. 일본 뮤지컬 시장의 규모 및 특징

 

1) 일본 뮤지컬 시장의 규모

 

일본의 뮤지컬 시장은 규모면에서 볼 때 미국(브로드웨이), 영국(웨스트엔드)와 함께 세계 3대 시장으로 손꼽을 수 있으며, 아시아에서는 호주와 한국 시장을 능가하는 명실공히 아시아 최고의 시장이다. 매출액 수준은 대략 연간 5천억원 규모로 알려져 있으며 이를 티켓단가 평균 약 7만원으로 계산했을 때 연간 관람객수는 어림잡아 7백만명에 달한다고 볼 수 있다. 브로드웨이 관람객 중 관광객 비중이 약 150만명이라고 추산하는 것에 비한다면 내수 고객 위주의 일본 뮤지컬 시장은 이미 매우 성숙해 있는 상황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그 중 극단 시키(四季)는 국내 뮤지컬 시장 전체 매출액보다 상회하는 2 5백억 ~ 3천억원 수준의 매출을 달성하고 있을 정도이며, 일본 시장에서도 절반 이상을 잠식하고 있는 거대 공룡이다.

 

2) 일본 뮤지컬 시장의 특징

 

일본 뮤지컬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인프라가 훌륭히 구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산업활성화를 위한 정부와 기업의 다각적인 지원과 협조 체계는 일본 특유의 국민성을 잘 보여 준다고 볼 수 있다. 방송국, 국영 철도회사, 교육기관, 보험회사 등 여러 기관에서 앞다투어 지원을 하고 있고, 국가에서는 공연장 건립에 필요한 부지를 알선하는 등 공연산업활성화를 위한 노력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한, 교육 시스템 역시 매우 체계적이어서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배우 양성소와 기숙학교 등이 산재해 있다. 10대 초/중반의 소녀만을 선발하여 기숙교육을 시키는 다카라즈카 같은 경우 여성만을 훈련시키고 다카라즈카 음악학교 출신의 여성만을 배우로 출연시키는 등 교육적 독창성과 특화된 다카라즈카만의 공연으로 정체성을 확보하고 있다. 최근에 건립한 요코하마 시키예술센터 신관의 경우,  대지 5200, 연건평 3500평의 2층 건물로 지어 졌으며, 100평이 넘는 연습실 6개를 포함해 26개의 연습실과 트레이닝룸, 식당, 휴게실, 사무실 등을 갖추고 있는 복합시설이다. 건설 비용은 우리 돈으로 약 600억원으로 연습실이 없어 이곳 저곳을 전전해야 하는 국내 극단들에서는 가히 꿈꾸기 힘든 현실인 것이다. 이처럼, 국내 뮤지컬 시장 발전의 가장 큰 저해 요소는 일본의 현실에서 보듯이, 관련 기관의 지원과 훌륭한 공연을 만들 수 있는 탄탄한 인프라 구축이 선행되지 못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림 1. 다카라즈카 공연 포스터] 

 

[그림 2. 다카라즈카 음악학교 학생들]



2.
창작 뮤지컬 시장의 취약

 

1) 창작 뮤지컬 시장의 취약

 

일본 뮤지컬 시장은 국내와 마찬가지로 해외 인기작들이 대부분 수입돼 공연된 상태로 창작 뮤지컬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창작 뮤지컬을 제작하는 능력도 매우 부족하여 점점 창작 뮤지컬의 자생력이 약해 지고 있다. 일차적인 원인은 제작비의 손익분기점이 높아 이미 검증된 인기작 위주의 라이선스 공연으로 시장을 키워왔기 때문인 것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극단 시키도 이렇다 하게 내노라 할 창작 작품이 없으며, 토호의 경우에도 현재 대형작에서 벗어나 소극장용 ‘롱런 작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창립 20주년이 지난 현재까지 자체 제작 창작뮤지컬이 3편에 불과할 정도로 일본은 창작뮤지컬이 취약하다. 창작 뮤지컬 부족이라는 취약한 시스템이 지속될 경우, 일본 뮤지컬 시장은 수입의존도를 높일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젊은 관객들의 다양한 취향에 부응하지 못하고, 창작 전문인력, 인프라 등이 자연적으로 취약하게 되어 그 미래가 밝기만 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2) 한류 뮤지컬의 인기도 상승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일본 공연계는 소극장에서 롱런할 수 있는 새 작품들을 찾고 있고, 쇼적인 브로드웨이 대작만을 보아온 일본 관객들이 오히려 그들 정서의 밑바닥을 건드릴 수 있는 한국의 창작 뮤지컬에 점점 더 환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사랑은 비를 타고의 경우 도쿄뿐 아니라 규모가 큰 다른 도시에서도 순차적으로 공연되고, 오키나와의 ‘키지무나 페스타’에 초청된 창작뮤지컬 ‘소나기’는 3회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일본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신 바 있다. 그 외에도 이미 겨울연가, 달고나, 소나기,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등의 국내 창작 뮤지컬들이 일본 뮤지컬 시장에 성공적으로 발을 들여 한류 뮤지컬의 일본 진출 가능성을 더 높였다. ‘사랑은 비를 타고는 시키와 함께 일본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우는 토호에 의해서 3년간 국내 제작사에게 7%의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고, ‘달고나제작사 PMC는 공연 수입의 5%를 라이선스 수입으로 거둬 들인다.

창작 뮤지컬은 아니지만, 일본에 진출한 공연은 그 밖에도 겜블러, 지킬앤하이드, 맨오브라만차 등이 있으며, 조승우가 출연했던 도쿄 유포트 극장의 지킬앤하이드는 공연예매율 80%(조승우 출연일 매진), 공연 후 기립박수를 기록하는 등 시키와 토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성공하는 등 한국 뮤지컬의 저력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그림 3. 도쿄 유포트 극장. '조승우' 지킬앤하이드 기립박수 장면]


 

II. 극단 시키(四季)의 발전 과정 및 성공 전략

 

 

1. 극단 시키(四季)의 발전 과정

 

1) 극단 시키(四季)의 개요

 

1953년 게이요 대학 불문과 출신의 아사리 게이따에 의해 순수연극단체로 출발한 극단 시키는 현재 1200여명의 배우와 스태프로 이뤄져 있으며, 일본 전역에 9개의 전용극장에서 해마다 3천여 회의 공연을 통해 3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대형 극단으로 일평균 8~12개 극장에서 매일 작품을 올리고 있다. 한해 매출액은 약 3천억원에 육박하여 일본 뮤지컬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연간 약 250억원의 순수익을 내는 기업이기도 하다. 일본 내 장기공연 1~4위까지를 석권하였으며, 1983년에 시작한 뮤지컬 〈캣츠〉는 2008 7천회를 돌파하는 등 지금도 전용극장에서 공연할 정도로 일본의 장기 공연 풍토를 정착시켰고, 1998년부터 시작한 〈라이언 킹〉 역시 2006년에 이미 5천회를 달성한 바 있다. 자본금은 5억엔, 최고 주주는 아사리 게이따 이며, 종업원 지주회가 그 다음을 잇는다. 또한, 관객제일주의와 문화예술의 지방 보급화를 이념으로 내세우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기업이다.

 
[그림 4. 도쿄 하루() 극장. 라이온킹 전용관]


 

2) 극단 시키(四季)의 발전 과정

 

극단 시키는 1953년 설립이래 현재까지 총 6개의 단계로 시대적 구분을 할 수 있으며, 각 단계는 아래와 같이 고유한 특성들을 띄고 있다.

  

< 1 ; 1953~1963태동기 >

 

극단 시키는 1953년 게이요 대학 불문학도인 아사리 게이따와 동경대 불문과 출신들이 모여 결성된 극예술단체로 초기에는 순수연극단체로 출발하였으나, 오사카에 근거한 일본생명극장(이하 일생극장)과 인연을 맺으면서 어린이 명작극장이라는 아동극을 통해 서서히 상업화의 길로 접어 들기 시작한다.

  

< 2 ; 1964~1968도약기 >

 

  2기의 시키는 군소 극단에서 메이저 극단으로의 발전 토대를 형성하는 시점으로 1965년 창작 뮤지컬 온디누가 성공하여 앵콜 공연을 하게 되며, 이 때부터 시키는 회당 개런티 형식이 아닌 배우 월급제를 적용하는 획기적인 기획을 한다. 그리고, 2기의 시키는 문화예술의 도시집중 현상에 반대하면서 전국공연에 돌입하게 되고, 우익에 속해 있는 아사리는 좌익 성격의 노동자문화예술협회와 갈등을 빚으면서도 지방공연의 성공을 가져 온다. 또한, 도쿄 요요기 근처에 대지 107, 건평 128평 규모의 3층짜리 스튜디오를 건립하는 등 공연장 건립의 기틀을 마련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벌거벗은 임금님출연배우 전원의 81회분 개런티의 자발적 반납으로 건립되어다는 후문)

 

 < 3 ; 1969~1978급변기 >

 

3기는 1968년 소설가 이시하라 신따로가 국회의원이 되면서 일생극장은 제작에서 손을 때고 대관만 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하면서 일생극장의 보호하에 있던 시키는 일생극장과 결별을 하게 되고, 2기의 어린이 뮤지컬을 기반으로 뮤지컬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게 되는 시기로 양상은 급변한다. 1973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1974년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일요일은 참으세요, 1977년 결혼이야기 등의 공연은 이 시점에 올려진 작품들이다.

 

< 4 ; 1979~1988전성기 >

 

시키는 이 시기를 통해 그 세력을 점점 확장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한다. 또한, 나카소네 전 수상의 후원으로 대지 1,200, 건평 1,100평 수준의 아트센터를 건립을 하게 되며, 티켓 예매 시스템을 일본에서 처음으로 전산화 하였고, 후지TV와 일본방송 개국기념행사로 캣츠를 공동 진행하는 등 아사리 게이따의 프로듀서로써의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시점이자, 캣츠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시키의 위상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1980년 빨간머리앤, 1982년 에비타, 1983년 캣츠, 1987년 창작 뮤지컬 꿈에서 깨어난 꿈에 이어 1988년 오페라의 유령은 캣츠 만큼은 아니더라도 롱런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특히, 1979년 코러스 라인은 완성도 면에서 시키의 본격적인 뮤지컬 진출작으로 손꼽을 수 있다. 꿈에서 깨어난 꿈은 1987년 어린이 뮤지컬로 초연되었으나, 그 이듬해 성인용으로 다시 제작된 것이 특이하다.

  

< 5 ; 1989~1998팽창기 >

 

  이 시기는 1989년 시키가 연간 공연회수 1천회를 돌파하면서, 극장건설에 에너지를 쏟는 시기로 1993 9월 철도회사와 연계하여 ‘JR씨어터를 건립하면서 처음으로 캣츠 전용관을 보유하게 된다. 1995 11월에는 아카사카 TBS 방송국부지에 아카사카 뮤지컬 극장을 건립하여 미녀와 야수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이처럼 제 5기는 도쿄 시나가와, 하마마츠, 오사카, 아카사카, 우쿠오카 등 전국적으로 극장을 건립해 왔으며, 현재까지 총 9개의 극장이 건립되어 졌다. 시키는 이렇다 할 창작 뮤지컬은 없지만, 그래도 가장 성공한 창작 뮤지컬로 평가받는 이향란(1991. 1)이 이 시점에 올려 지며, 유타와 이상한 친구들(1989) 등 창작 뮤지컬에 대한 투자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보인다.

  

< 6 ; 1999~현재 전환기 >

 

  6기의 시키는 제 5기의 팽창기의 연속선상으로 볼 수 있다. 1999 5월 신나고야 극장 건립을 필두로 2002년 교또 극장, 덴쯔 사계극장, 2003년 자유 극장(450~500석 규모) 등의 공연장 건립을 꾸준히 추진해 오고 있다. 이 시기의 작품으로는 1999년 송앤댄스, 벽을 뚫는 남자, 2000년 오버 더 센추리, 2001년 이국의 언덕, 2002년 콘택트와 맘마미아가 있으며, 맘마미아는 현재도 롱런 중이다. 아사리 게이따는 2002년 주주총회 이후 회장직에서 물러나 예술총감독으로 한 걸음 물러 나 있다.


 

2. 극단 시키(四季)의 성공 전략

 

1) 뛰어난 프로듀싱 및 마케팅력

 

 

시키는 이상과 현실을 잘 절충하여 일본 뮤지컬 산업의 부흥을 가져온 장본인이다. 그 이면에는 아사리 게이따라는 당대를 풍미한 인물이 있었다. 아사리는 소위 반반한 창작 뮤지컬 하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뮤지컬 산업의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물론 훌륭한 연출가이자 예술가이지만, 그 이상의 훌륭한 프로듀서 였다는 점이다. 그의 마케팅 전략은 지역의 유명 신문사 및 방송사와 연계하고 자본력이 우수한 기업을 개입시켜 지역화를 고착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시키와 관련된 언론 및 기업을 보자면, 초기의 일본생명, 후지큐, 야쿠르트, 후지TV, 일본방송, TBS방송, 철도회사/철도역(삿포로, 시나가와 등), 후쿠오카 및 기타 미원 회사, 자동차 회사 등에서도 후원을 받았으며, 대표적 보수우파 정치가인 나카소네 전 수상, 이시하라 신따로 동경 도지사 및 김종필 전 국회의원, 신격호 전 롯데 회장 등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 5. 극단 시키 창립자 아사리 게이따]


2)
고객제일주의 추구 및 회원제 활성화

 

  고객제일주의 혹은 관객제일주의는 시키의 경영이념 중 하나이다. 관객의 입장에서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하는 자세는 시키의 성공요인 중 매우 큰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공연장의 모든 직원들은 아르바이트생이 아닌 시키의 직원들로 매일 30분씩 예절 교육을 받도록 되어 있다. 심지어,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입장을 할 수 있도록 별실을 만드는 섬세함까지 갖추었다. 또한, 가족끼리 관람시 평소보다 20~30% 할인된 가격으로 볼 수 있도록 가격 부담을 줄이는 등, 뮤지컬은 특별한 날 관람하는 이벤트라는 고정관념을 깼다.

시키의 회(四季)라고 하는 시키가 운영하는 회원제는 현재 전국적으로 약 20~30만명에 달할 정도로 유명하다. 이들에게는 사전예약제도, 상시할인제도, 탁아서비스 등 차별화된 시스템과 서비스를 제공하여 충성도를 높이고 있으며, 이들은 2회 이상의 중복관람을 하면서 시키와 공연을 함께 만들어 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3) 배우 역량 강화 및 체계적 훈련시스템 도입

 

아사리 게이따는 예술과 경영에 대한 균형을 매우 중요시 여겨 배우의 전문성을 위한철저한 보수중심주의를 표방하였다. 회당 계약제를 파괴하고 배우 월급제 또는 1년 계약 연봉제를 실시하여 억대 연봉을 받는 배우들도 생겨 났다. 배우들의 훈련 시스템 강화를 위해서 시키예술센터를 건립하고 전속 트레이너를 고용 하였으며, 체계적인 레슨과 충분한 연습 공간 확보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4) 장기 공연 추진 및 전용 극장 확보

 

시키는 현재 일본 전역에 9개의 전용관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야 하는 위험 부담이 있는 반면에 장기간 사용시 초기 투자 비용이 회수되고 대관 문제에 대한 고민 없이 연중 내내 안정적으로 작품을 상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시키의 이러한 전략은 성공하였고, 캣츠를 포함한 4~5개 작품은 지금도 오픈런으로 공연을 하고 있다.

[
그림 6. 시키 극장]

  

 

III. 시키(四季)가 일본 공연산업에 미친 영향 및 향후 시장 전망

 

 

1. 시키(四季)가 일본 공연산업에 미친 영향

 

1) 산업화 정착 및 시장 형성

 

일본의 도시개발 양상은 전통적으로 기차역을 중심으로 역세권이 형성되고 소비와 산업화가 가속화되는 특징이 있는데 시키는 이러한 특성을 잘 활용하여 역 부지 혹은 역 주변에 공연장을 건립하고 산업화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아울러, 자본력과 네트워크를 소유한 기업과 언론 매체를 개입시켜 공연예술 시장에 신뢰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였고, 장기 공연의 토양을 만들어서 일본 뮤지컬의 시장을 형성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2) 장기 공연 풍토 구축

 

일본 뮤지컬 시장의 저변 확대는 장기 공연의 기반이 형성되면서부터 라고 볼 수 있다. 높은 제작단가로 인한 비싼 티켓 가격, 공급 시장의 과다 경쟁 등으로 장기 공연의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국내 시장과는 달리 일본은 탄탄한 시스템과 충성도 높은 회원제 운영 및 현실적인 티켓 가격 정책을 도입하여 장기 공연의 성공을 가져 왔고, 여러 공연들을 각 지역에 골고루 분산시키며 지역 산업 발전에도 기여를 하는 등 일본 내 뮤지컬 보급에 앞장 서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3) 앙상블 시스템 정착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본의 배우 양성 시스템은 매우 체계적이다. 배우 양성소나 기숙학교와 같은 체계화된 교육 기관에서 혹독한 훈련을 거치고 충분한 연습 공간 확보와 트레이닝 시스템을 통해 양질의 배우들을 양산해 내는 체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대에 서는 모든 배우들이 스타가 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조직을 구성하는 구성원들 간의 신뢰를 높여 주고 배우에게는 앞으로의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시키의 경우도 스타의 부재로 인해 처음엔 고전을 면치는 못했으나, 시간이 경과할수록 앙상블 중에서 스타가 배출되고, 이에 자극을 받은 배우들은 더욱 열심히 함으로써 앙상블 시스템은 제대로 정착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우들에게는 적절한 보상과 비전을 줌으로써 극단과 배우와의 유대관계를 강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했다.

 

 

2. 향후 일본 공연시장 전망

 

극단 시키의 1964년 벌거숭이 임금님(원작/안데르센, 연출/아사리 게이따)은 도쿄를 중심으로 564개 학교 10 5780명 아이들을 무료로 초대하였다. 극단이나 기업이 개인차원에서 아이들을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위원회나 학교관련행정기관과 협의하여 초대학교를 확보하는 등 학교수업의 일환으로 초대함으로써 신뢰성을 주는 것이다. 1971년부터는 오사카를 비롯하여 고베, 나고야, 후쿠오까, 삿뽀로, 요코하마, 기타큐슈, 센타이, 히로시마, 큐슈로 확대하면서 11개 도시에서 계속 실시하여 총 300만명 이상의 아이들을 공연에 초청한다. , 아이들을 위한 공연을 통해 미래의 관객을 육성한다는 생각이었다. 시키의 이런 전략들은 서서히 빛을 발하여 과거의 어린이 관객들이 성인이 되어서 다시 공연계로 돌아 오게 되었다. 마치 연어가 고향으로 회귀하는 것처럼. 일본의 뮤지컬 시장은 이제 제대로 된 산업화에 깊은 뿌리를 내렸다. 앞서 배우의 사례에서, 회원제 관객들의 충성도에서, 또 어린이 관객들의 회귀에서 보듯이 일본 뮤지컬의 전통은 그 명맥을 유지하기에 충분하다.

 

다만, 창작 뮤지컬이 활성화 되지 않아서 젊은 세대의 구미에 맞추지 못하는 것은 지속적인 발전 가능성을 저해하는 요소임에는 분명하다. 일본 뮤지컬의 가장 큰 문제는 세대 교체라고 볼 수 있다. 시키가 아사리를 잇는 연출가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듯이 젊은 세대의 구미에 맞는 새로운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내고 이에 창작적 아이디어를 가미해 나갈 젊은 인재들을 충분히 수혈해 나가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일본 뮤지컬은 지금보다 한층 더 계승 발전되는 제 2의 전성기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



* 출처 : (주)에이콤 인터내셔날 마케팅실장(★ 고독한 눈망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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