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Culture No.4

 

K-Classics

A New Presence on the World’s Musical Stage

 

 

 

 

 

차례

 

프롤로그

 

챕터1. 한국의 대가들

지휘자 정명훈

피아니스트 백건우

소프라노 조수미

 

챕터2. 한국의 연주자들

작곡가

지휘자

성악가

피아니스트

현악기 연주자

관악기 연주자

앙상블

 

챕터3. 한국의 오케스트라

서울/경기/인천 지역 오케스트라

지방 오케스트라

 

챕터4. 한국의 음악교육 인프라

 

챕터5. 한국의 공연장

 

에필로그

 

부록

 

(작성: 객석)

 

 

프롤로그

2021세기 문화의 당대적 특징을 설명함에 있어, 다양성대중성이라는 키워드가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꽤 오래 전부터 우리는 문화예술산업의 영역에 두고 바라보았고, 대중문화의 활성화 속에 순수예술은 일부 사람들을 위한 문화로 치부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과거부터 내려져온 순수예술의 기반이 없는 곳에서 대중문화가 꽃을 피우기는 어렵습니다. 순수예술은 뿌리이며, 그 뿌리가 튼튼할 때 대중문화라는 열매는 더욱 실하고 달아지기 때문입니다.

한류라는 이름 하에 한국의 드라마가 일찍이 전 세계인들의 사랑 받아왔습니다. 최근엔 대중음악이 ‘K이라는 이름으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다만 산업의 크기 차이로 인해 조금 덜 주목 받거나 조금 덜 이야기 될 뿐, 같은 순간, 한국의 젊은 클래식 음악가들도 K팝 가수들 못지 않게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음악활동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일례로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한국은 남녀 성악 부문에서 각각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피아노 부문에서 2,3, 바이올린 부문에서 3위에 오르는 등 5명이 한꺼번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하는 쾌거를 올렸습니다. 성악 부문으로 치러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도 한국의 소프라노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한국의 클래식 음악은 짧은 기간 동안 빠른 성장을 보였습니다. 1950년대, 6.25 전쟁 중 부산의 피난학교에서 음악을 공부했던 1세대 음악인들이 성장하여 전국 각지에 음악대학을 세우고 그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2세대라 할, 그들의 제자들은 1970~1980년대 바삐 해외 유학길에 올랐고, 그들이 돌아와 가르친 학생들은 이제 한국 안에서 교육받고 성장하여 세계 무대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해외 공연예술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한국의 젊은 음악학도들이 어떻게 교육받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습니다. 더불어 한국을 찾는 많은 해외 음악인들이 가장 놀라워하는 것 또한 음악회장을 가득 채운 한국의 젊은 관객들입니다. 그들에게 한국은 젊고 유능한 연주자들과 젊고 열정적인 청중이 존재하는 매력적인 나라입니다. 전후 시대를 풍미했던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계의 별들이 하나둘씩 지면서, 세계 음악산업계는 새로운 얼굴, 새로운 청중을 요구해왔습니다.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오늘은 그 요구에 부합하는 가장 진취적인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께 여전히 성장 중인, 그래서 젊은한국의 클래식 음악을 소개하려 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가 세 명을 만나고, 그리고 그들을 키워낸 이 땅의 서양음악 역사를 얘기합니다. 이어지는 한국의 연주자편에서는 각 장르별로 주목해야할 음악가들을 소개합니다. 이어 한국 전역의 도시에 퍼져있는 오케스트라들을 소개하고, 이 땅의 음악 교육 인프라를 설명합니다. 끝으로, 여러분이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 꼭 그곳에 들러 음악을 감상해보셨으면 하는 공연장들을 소개합니다.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 K클래식은 젊습니다. ‘클래식 음악이 박물관의 유물로 남지 않도록, 그 음악에 당대성을 부여할 수 있는 힘은 젊음의 힘입니다.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미래를 꿈꾸게 하는 한국의 젊은 K클래식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1장 한국의 대가들

 

떠오르는 한국의 클래식 음악가들을 소개하기 앞서 세계 무대에서 큰 성과와 업적을 이룬 한국의 대표적인 클래식 음악 대가 세 명을 소개하려 한다.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들을 거쳐 서울시향의 상임지휘자로 부임하여 서울시향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지휘자 정명훈(Chung Myung-whun), 유럽 무대에서 주로 활동하며, 다양한 작곡가들의 곡을 독자적으로 해석하는 광범위한 연주경력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백건우(Paik Kun-woo),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에게서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극찬을 들으며 국제 무대에서 화려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소프라노 성악가 조수미(Jo Su-mi)가 바로 그들이다. 1장에서는 이 세 명의 음악 여정을 되새겨 본 후, 조선시대부터 유입된 한국의 서양 음악 역사를 소개하여, 한국에서 클래식 음악이 어떻게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지, 1세기 가량 되는 한국의 짧은 서양음악사를 살펴 보기로 한다.

 

지휘자 정명훈

아름답고 치열한 시간여행

 

크고 화려한 업적을 이룬 음악가들의 인터뷰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셨습니까?” “어렸을 때는 어떤 아이였나요?” 처음 그 시작을 살펴보면 오늘의 업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잘것없지만, 그럼에도 훨씬 근원에 가까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기에 우리는 언제나 그들의 처음이 궁금하다. 물론 이는 유명인사나 위인에게만 적용될 일은 아니다. 아주 평범한 사람들도 지금의 그들이 있기까지에는 거친 원석, 작은 씨앗, 찰나의 빛 같은 시작이 분명 존재했다.

지휘자 정명훈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정명훈의 처음은 피아노였다.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난 정명훈은 다섯 살에 처음 피아노를 배워 2년 뒤인 일곱 살에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을 하여 청중을 놀라게 했다. 그의 피아노 솜씨는 날로 늘어 아홉 살이던 1961년에는 누나인 명화경화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음악공부를 이어가게 된다. 그리고 곧 시애틀 심포니와 협연하여 절찬을 받았다. 그는 시애틀의 고등학교에 다닐 때엔 미식축구로 신체를 단련하면서 피아노 공부에 열중했다. 그러다가 뉴욕으로 이주,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정명훈은 물론이고, 그의 고국이 잊지 못할 첫 사건은 그의 나이 21세에 벌어졌다. 1974, 철의 장막 시절, 구 소련에서 열린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참가한 피아니스트 정명훈은 2위를 차지했다. 그의 고국은 서울의 광장에서 축하 퍼레이드를 열어주며 개선장군을 맞이하듯 그를 환영했다. 클래식 음악가의 성취를 이같이 축하한 것은 한국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이때부터 국제 무대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얼마 뒤엔 영국의 BBC방송국에서 정명훈 삼남매가 연주하는 것을 녹화하여 만든 영상이 전 세계에 소개되었다. 이때의 정명훈은 피아니스트로서 활약했으며, 그는 누나인 정경화에 이어 데카 레이블에서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내게 되었다.

지휘자로서의 본격적인 커리어는 1970년대 말에 시작됐다.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지휘를 전공한 그는 1979년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음악감독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를 보조하게 되었고, 2년 후 이 악단의 부지휘자가 되었다. 이후 정명훈은 독일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 상임지휘자(1984~1990), 피렌체의 테아트로 코뮤날레 수석 객원지휘자(1987~1992),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음악감독(1989~1994)을 역임했다. 1997년부터 2005년까지 로마 산타체칠리아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를 지냈고, 2000년부터 현재까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유럽에서뿐 아니라, 아시아 무대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정명훈은 1997년부터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이며, 2001년부터 2010년까지 도쿄 필하모닉의 특별예술고문을 지냈다. 2006년부터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예술감독으로 취임, 단체의 과감한 체질개선을 주도하며 한국 음악계의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정명훈을 언급함에 있어 그의 왕성한 녹음 활동을 빼놓을 수 없다. 1990년부터 도이치 그라모폰(DG)의 전속 아티스트로서 20여 장의 음반을 레코딩했는데, 특히 ‘4중주를 위한 협주곡을 그에게 헌정한 메시앙의 음반들과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 로시니의 스타바트 마테르’,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셰에라자드’, 베르디의 오텔로’, 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등은 오늘날에도 최고의 음반으로 평가 받는다.

그는 최근 괄목할만한 성과를 추가했다. 20114, 정명훈이 이끄는 서울시향은 유니버설 뮤직과의 5년 계약서에 서명했다. 이로써 정명훈과 서울시향은 5년간 매년 두 장의 음반을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로 출시하게 됐다. 2011년 여름 드뷔시의 바다라벨의 라 발스를 담은 첫 음반이 나왔고, 가을에는 말러 교향곡 1번이 출시됐다.

이 글의 끝에, 2008년 정명훈과 월간객석이 진행했던 인터뷰의 일부를 추가한다. 1984년 그와의 인터뷰 질문을 24년 후 똑같이 물어봤던 인터뷰다. 이 또한 벌써 3년 전의 답변이 되어 과거 그의 생각이 되어버렸을지 모르나, 빠른 세월이 무색할 만큼 정력적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간 음악인 정명훈의 어제와 오늘을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기에 다시 한번 언급해본다. 잠시나마 우리는, 정명훈은 그 아름답고 치열했던 시간 여행에 동행해보자.

 

현재의 정확한 소속은 어디인가?

1984 자르브뤼켄 방송 교향악단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있다. 그러나 연간 10주 정도 밖에 일을 못한다

2008 20005월부터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 20014월부터 도쿄 필하모닉의 특별예술고문을 맡고 있으며,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2005년 예술고문으로, 2006년부터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음악인으로서 갖고 있는 꿈은 무엇인가?

1984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브람스드보르자크의 작품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게 연주하는 지휘자가 되고 싶다.

2008 여태까지 매일매일 꿈속에서 살았다고 할 만큼 음악인으로서 감사한 삶을 살고 있다. 이제는 음악을 통해 조금 더 값진 일을 찾고 싶고, 이를 통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외의 다른 꿈은?

1984 어려서부터 생각했던 것이고, 우리 형제들 모두의 생각이 그렇듯이 한국의 음악계를 위해서 일을 하고 싶다. 현재 어떤 방향이 좋을지 방향을 찾는 중이다.

2008 앞의 질문에 대한 답과 연결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한국 사람으로서 세계의 웰빙을 위해, ‘이 행성을 위해 일하고 싶다. 이러한 맥락에서,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최근 들어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그것은 언제쯤이 될 것인가?

1984 당장은 어렵겠다. 나도 아직 공부를 해야 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발전이 있어야 한국의 음악계를 위해서 할 일도 많을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생각으로는 4~5, 빠르면 2~3년 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피아니스트와 지휘자로서 양쪽 길을 가겠지만, 지휘 쪽에 더욱 정열을 쏟겠다.

2008 언제라고 단정지어 말하는 것은 힘들 것이고 열심히 하는 만큼 조금씩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나는 음악을 믿는다

 

2011년 가을,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한국의 작은 섬마을을 돌면서 피아노 독주회를 펼쳤다. 클래식 음악 연주회를 구경하기 어려웠던 섬 주민들은 뜻밖의 거장의 방문을 기쁘게 맞이했다. 백건우에게 왜 섬마을 콘서트인지를 물었을 때, 그 대답에 고향이 있었다. “다시 한국을 알고 싶은 충동에서 시작됐어요.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고향을 찾는 법이지요. 한국에서도 여기저기를 다니며 많은 공연을 해왔지만, 좀더 깊숙이 들어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나의 언어는 음악이니까, 그곳 사람들과 음악으로써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것이고요.”

1946년 서울에서 태어난 백건우는 배재중학교 1961년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1969년 부소니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스물여섯이 되던 1972년 라벨 피아노곡 전곡을 연주하며 뉴욕에서 데뷔했다. 국제적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을 때, 백건우는 유럽으로 건너가 삶의 터전을 파리로 정했다. 20대는 미국에서, 이후는 파리에서 보낸 셈이다.

백건우의 삶은 여행의 연속이었다. 인터뷰를 통해 엿본 바로는, 그는 연주여행을 일로 느끼거나 힘들어하지 않는 듯하다. 실제로 웬만한 전문여행자만큼이나 많은 곳을 둘러봤을 그는, 여행의 추억을 얘기할 때면 어린아이처럼 설레는 표정을 짓곤 했다. 백건우에게 섬은 어떤 존재일까. “동떨어진꿈 같은, 그런 존재라고 한다.

그의 음악은 언제나 열려있었지만, 실제로 최근 몇 년간 백건우가 선보였던 작업들을 보면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수 있는 것은 없었다. 언제나 그렇게 진지했다. 그의 레퍼토리는 바흐에서부터 슈톡하우젠, 부소니에서 스크랴빈, 리스트에서 메시앙까지 대단히 광범위하다. 최근의 연주 이력을 살펴보자면, 2007년 일주일간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라는 큰 산을 넘었고 그 이전 해인 2006, 작곡가 자신의 지휘로 펜데레츠키 피아노 협주곡 부활KBS교향악단과 연주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복잡하고 비정상적인 사회에 굴하지 않고 언젠가는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평화의 의지가 담긴 작품이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의 이듬해인 2008년엔 메시앙 탄생 100주년을 맞아 메시앙의 아기예수를 바라보는 스무 개의 시선을 연주했다. 그리고 2011, 리스트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가 선보인 리스트의 연주회 또한 문학에 연관된, 혹은 후기 작품에 집중하다 보니 종교에의 귀의와 조국을 그리워하는 노년의 외로움 등 전체를 아우르는 분위기가 차분하니 무게가 있었다.

2011, 리스트 탄생 200주년으로 전 세계가 리스트의 이름을 외쳤는데, 백건우는 일찍이 이 음악의 사제에게 집중한 적이 있었다. 오래 전, 파리에서의 일이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들은 리스트의 죽음의 춤저주는 그날따라 유난히 다르게 그의 마음을 두드렸다. ‘리스트는 왜 이런 곡을 썼을까라는 물음은 어떤 곡을 썼을까라는, 오히려 기초적인 질문으로 확장됐다. 리스트를 탐구하면 할수록 백건우는 자신이 리스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적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리스트의 피아노 작품은 600곡 넘게 알려져 있지만 이마저도 전곡이라 할 수는 없었다. 작품이 여전히 발견되고 발굴되는 중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꽤나 알려진 작품들도 30여 년 전, 백건우가 리스트에 빠졌을 당시엔 악보 구하기도 어려웠다. 백건우는 원하는 악보들을 구하기 위해 몇 년을 보냈고, 이들을 여러 성격으로 나눠 연주회 프로그램을 짰다. 1982년 프랑스 파리에서 리스트 작품만으로 구성된 6회의 독주회를 선보였다. 50여 곡의 리스트 음악이 연주됐다.

무대 위에서뿐만 아니라 디스코그래피에서도 그의 진지한 탐구 정신은 오롯이 묻어난다. 백건우는 스크랴빈리스트무소륵스키의 피아노 작품 전곡을 녹음했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과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 녹음을 했다. 2000년 바흐-부소니에 몰두했고, 2001년엔 포레, 2003년 쇼팽 협주곡 전곡을 녹음했다. 2005년에 베토벤 소나타 32곡 녹음을 시작하여 2007년에 전곡을 완성해 데카 레이블에서 발매했다.

그에게 전곡 녹음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하나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시간적 공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전곡 녹음은 접근 방식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어요. 연주자로서 넒은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고,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귀결되는 것이겠지요. 예술에 완성이나 완벽이란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늘 하루 종일 이렇게 피아노 앞에 붙어있는 것이겠죠. 이런 훌륭한 세계를 우리가 같이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요. 브람스도 그랬다지요. 사랑하는 일을 하기에 행복하다고

다시 이야기의 처음으로, 백건우의 섬마을 콘서트 얘기로 돌아오자. 이 공연에서 연주한 드뷔시와 리스트의 작품이 처음 접하는 청중에게 다소 어렵게 느껴지지 않겠느냐 백건우에게 묻자 그것은 연주자의 책임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연주로써 청중을 설득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가 연주자에게는 제일 큰 문제입니다. 음악은 교육을 통해 느끼는 것은 아니기에, 연주자가 그 음악을 잘 해석하고 연주하면 모든 인간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제 믿음입니다.”

진지한 음악, 그러나 마음을 열고 들어주기를 바라는 음악. 서로 다른 방향이 결국은 맞닿았다. 그것은 백건우가 믿는다는 음악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소프라노 조수미

거부할 수 없었던 밤의 여왕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성악무용피아노가야금 등을 익힌 재능 많은 소녀가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집에서 매일같이 칼라스와 서덜랜드의 음반을 들려줬다. 소녀는, 비록 무슨 뜻인지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고 그저 흉내만 내는 수준이었지만 그때 어렴풋이 무의식적으로나마 자신만의 음악적인 스타일을 익힐 수 있었다. “리처드 보닝과 제 첫 음반 ‘Carnaval!’을 녹음할 때, 마에스트로가 그저 옆집 아저씨처럼 편하게 느껴진 것도 어렸을 때부터 앨범재킷을 통해 그 분의 얼굴을 봐왔기 때문이죠.” 2011, 국제데뷔 25주년을 맞이한 그녀의 회상이다.

소프라노 조수미는 선화예중선화예고와 서울대 음대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1983년 이탈리아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으로 유학을 터났다. 그리고 2년 후 나폴리에서 개최된 존타 국제 콩쿠르를 석권하고 1986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프란시스 비냐스 국제 콩쿠르, 남아공화국 프레토리아 국제 콩쿠르, 이탈리아 베로나 국제 콩쿠르 등을 석권하며 이탈리아를 거점으로 세계적인 커리어의 발판을 굳혀나갔다.

그녀의 공식 국제 데뷔는, 1986년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베르디 극장에서 질다 역을 부르면서 이뤄졌다. 그때 대한민국에서 조수미를 알았던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한때 스미조(Sumijo)라는 일본인 소프라노가 유럽 무대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중이란 루머가 퍼졌을 정도라니, 당시 유럽과 한국의 음악적 시차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조수미가 본격적으로 고국의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건 88서울올림픽 전후. 특히 1993년의 내한 독창회는 한국에 조수미 열풍을 몰고 왔다. 같은 해 여름, 그녀는 밤의 여왕으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무대에 섰다. 물론 이보다 앞선 1989년 이미 잘츠부르크 무대에 데뷔한 바 있다. 1988, 조수미는 자신의 오페라 인생을 세계 정상의 무대로 끌어 올리는 계기가 되는 전환점을 맞이한다. 바로 카라얀과의 만남이다.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카라얀의 극찬과 함께 그녀는 오디션에 초청됐고, 1989년 잘츠부르크 데뷔 무대를 얻었다.

잘츠부르크 데뷔는 베르디의 가면무도회오스카르 역으로 이뤄졌어요. 저에겐 큰 기쁨이자 슬픔이었던 무대였습니다. 공연 일주일 전에 카라얀이 서거했기 때문에 숄티 경이 대신 지휘를 했는데, 눈물을 삼키며 노래를 불러야 했지요. 그날 이후 잘츠부르크에서의 기억은 거의 매일같이 왔던 비처럼 우울한 기억이 많았어요. 1993년 밤의 여왕을 맡아 잘츠부르크로 돌아갔을 때도 비만 오면 엄청 추워지는 현지 날씨 탓에 늘 감기를 달고 살았고, 최선이 아닌 컨디션으로 그 힘든 배역을 연습해야 했습니다. 더군다나 3kg이 넘는 왕관,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의상, 말씀하신 그 무대화장까지 절 힘들게 했어요. 근데 가장 힘들었던 게 뭔지 아세요? 보통의 A=440Hz보다 높은 444Hz의 오케스트라 피치였어요. 고음의 F를 마치 F#처럼 불러야만 했습니다. 아주 고생스러웠던 순간으로 기억되네요.”

밤의 여왕의 그녀에게 큰 영광을 안겨다 준 동시에 악몽으로 남은 역할이지만, 조수미를 우리 시대 최고의 밤의 여왕으로 꼽는 데 이견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밤의 여왕이나 콜로라투라의 여왕’(데카 레이블에서 동명의 음반 발매), 이런 타이틀이 무겁거나 지겹게 느껴진 적도 분명 있으리라. 그녀는 과연 여왕의 망령에서 벗어났을까? 그 답은, “조수미 씨에게 콜로라투라는 어떤 의미냐라는 질문에 잠 못 이루는 일이라 답한 것으로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다.

콜로라투라 음역대의 모든 노래가 잠을 못 자게 하는 건 아니지만, 특히 밤의 여왕을 불러야 할 때면 잠을 설치곤 했습니다. 음악적으로나, 배역의 성격으로나 완벽을 기해야 하는 역할이기 때문이죠. 고난도의 기교와 감정의 컨트롤, 배역이 갖는 긴장감과 무게 면에서 실수나 여유가 용납되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 모두에 영향을 주는, 그래서 잠도 설치게 만드는 그런 무대였던 셈이죠. 이제는 25년이라는 연주 경력이 있으니 오페라극장이나 콘서트홀 등 전문 공연장에서의 공연을 앞두고는 잠을 설칠 정도의 긴장을 느끼는 경우가 많지는 않습니다.”

조수미는 콘서트 및 오페라 무대에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음반 녹음에도 열정적이다. 과거 필립스 레이블을 통해 네빌 매리너가 지휘하는 세인트 마틴 아카데미 합주단과 여러 차례 녹음했고, 주세페 시노폴리가 이끄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합창단과의 말러 교향곡 녹음에도 참여했다(도이치 그라모폰). 또한 데카와 에라토 레이블에서도 여러 타이틀을 발매해 호평 받은 바 있다. 특히 1993년 게오르그 숄티/빈 필과 녹음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그림자 없는 여인은 그 해 그래미 상(Grammy Award)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2007년에는 유니버설 뮤직과 5년 계약을 체결해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을 통해 자신의 다양한 면모를 담은 음반을 꾸준히 발매해가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올해 9월에는 국제 데뷔 25주년을 기념한 ‘Libera’를 발표했다.

조수미, 영원한 밤의 여왕으로 기억될 콜로라투라. 그녀 자신도 우리도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의 서양음악유입사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이전에 한국은 조선이라 불렸다. 1876년 개항과 더불어 서구문물이 한반도에 유입되었고, 그와 함께 서양악이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한국의 서양악 초기 수용 양상은 외국인들이 성악 및 기악을 지도하고 연주한 활동의 역사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미국 선교사들이 전해준 찬송가와 독일인 프란츠 에케르트(1852~1916)가 창설한 양악대는 서양악 수용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먼저 개화기에 내한한 기독교 선교사들은 예배의식을 위한 찬송가를 보급했고, 이는 이후 서양악의 뿌리를 한반도에 정착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독일인 프란츠 에케르트의 지휘 아래 1901년에 만들어진 양악대를 위한 대원의 육성은 곧 서양악의 전파와 보급이었다. 당시 양악대는 한국 내 서양악의 기악발전을 위한 요람이 되었다. 양악대 출신의 백우용(1894~1925)은 에케르트 사후 흩어진 양악대원을 모아 경성악대를 조직하여 영화음악·대중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하는 등 서양악의 전승과 확산에 이바지하였다.

1910년에 조선은 일본의 침략과 불평등 조약인 한일병합조약 이후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후 조선보다 먼저 서구문물과 서양음악을 수용한 일본을 통해 서양악곡으로 구성된 일본군가가 유입되었고, 서구식 교육기관에서의 음악교육을 통해 서양악이 전파되었다. 일본에서 전문적으로 서양음악을 유학하고 온 연주가·작곡가·평론가·음악교육자 등 전문음악가들도 등장하였다.

식민지 이후 전문 음악교육기관 및 양악연주단체가 활성화되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사설 전문음악교육기관은 1909년에 건립된 조선정악전습소, 음악부 아래에 조선악(국악)과 서양악과를 두었다. 서양악과에서는 풍금(오르간)과 사현금(바이올린) 및 서양음악이론을 가르쳤고 봉선화와 같은 한국을 대표하는 가곡을 작곡한 홍난파(1898-1941) 등 다양한 음악가를 배출하였다. 이후 이화여자전문학교(현 이화여자대학교)1925년에 음악가가 설치되었고, 1918년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에서는 과외활동의 일환으로 밴드부·합창단·중창단·관현악부가 학교 내에 설치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서양악 연주단체의 공연활동도 활발했다. 1926년경부터 관현악단이 창단되었는데, 중앙악우회(1926)·경성제국대학관현악단(1928)·연희전문학교관현악단(1929)·경성관현악단(1934)·경성방송관현악단(1936)·조선교향악단(1940)등 전문관현악단이 설립되어 음악문화를 주도했다. 백우용·김인식·이상준·정사인·홍난파 등의 전문음악가의 출현은 한국양악사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들은 서양음악식 기법에 준한 가곡과 동요, 유행가와 같은 성악곡과 기악곡을 작곡하는 작곡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기도 했다. 이러한 악단과 작곡가는 양악의 보급에 큰 역할을 하였다.

1945815일 한반도는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1948년에 남과 북으로 갈리게 되었고, 1950625일에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으로 인해 많은 음악가들이 실종되거나 사망하기도 했다. 1950년대는 전쟁으로 인한 공백기를 메우기 위해 모든 악단들이 노력하며 새로운 비약을 위해 준비하는 시기였다. 해방 이후 어렵게 이루어놓은 기반이 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무너져버린 가운데 새롭게 악단을 정비하고, 서양음악 본국들과의 국제교류를 통하여 세계적 수준의 음악들을 적극적으로 흡수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우리 음악계가 나아갈 방향을 찾기 위한 논의들도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특히 전쟁 이후에는 연주계가 다른 분야에 비해 두드러진 활동을 보였는데 개인 연주회보다는 나름대로의 그룹을 형성하여 집단적 활동을 하는 연주자들이 두각을 드러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모체는 한국전쟁 중에 출범한 해군정훈음악대다. 1951년에 창립된 해군정훈음악대는 전쟁이 끝난 1957년에 서울시립교향악단으로 재출발했다. 또한 1950년에 발족한 육군관현악단은 전쟁 종료 후 1956년에 KBS교향악단으로 새롭게 발족되었다.

전쟁 이후 한국의 전쟁피해 복구를 위해 들어온 미군문화의 영향으로 한국의 음악계는 또 다른 발전의 국면을 맞이했다. 한동일은 이러한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성장한 피아니스트로, 도미 후에 국제 무대에서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피난지 부산에서 열린 제1회 이화경향콩쿠르에서 입상 후 1954년 앤더슨 중장의 전용 비행기를 타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1955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주최하는 영 피플즈 콘서트에서 젊은 음악가상을 수상했다.

식민지 시기에 주로 음악 유학을 가는 국가가 일본이었다면, 해방 이후에는 서구권으로 유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교류 또한 더욱더 활발해졌다. 1960년대에는 더 많은 이들이 서구 현지의 발달된 교육시스템 속에서 수학하여 국제무대에 등장할 수 있었다. 한동일의 국제무대 등장 이후 바이올니스트 정경화·김영욱 등이 그 뒤를 바짝 쫓았다. 이들은 당시 서울시립교향악단과의 협연을 통해 재능을 입증받거나 활발한 국제적 교류에 의해 한국을 내한한 해외 연주자들의 주선으로 유학 길에 오를 수 있었다. 바이올니스트 김영욱은 1960년에 한국을 찾은 피아니스트 루돌프 제르킨의 추천으로 커디스 음악원에 입학했고, 1965년 메리 위던 국제콩쿠르에서 최고상을 수상하며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1961년에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에 입학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1967년 레벤트리트 국제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1970년대에는 더 많은 음악가들이 콩쿠르에 입상하며 국제무대에 등장했다.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수학한 첼리스트 정명화는 1971년 제네바 콩쿠르에 1등으로 입상했다. 뉴욕 메네스 음악원에서 수학한 정명훈은 1974년에는 차이콥스키 국제 음악콩쿠르에 2위로 입상해 화제가 되었고, 이후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지휘를 공부하여 지휘자로 데뷔하기도 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또한 도미하여 몬트리올 콩쿠르·칼 플레쉬 콩쿠르·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석권하며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위와 같이 한국에서 서양음악의 역사는 한 세기의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음에도 오늘날 놀라운 음악적 성장과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배출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은 더 이상 서양음악 수입국이 아니라 이제 세계의 음악계를 주도하는 다양한 음악가들의 배출하는 음악선도국이 되었다. 또한 한국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교육시스템과 교육시설, 공연장, 많은 수의 애호가들이 있다.

2장 한국의 연주자들

 

최근 한국의 젊은 클래식 음악가들은 해외 유명 콩쿨을 석권하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해방 이후 해외 유학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음악가들의 수준이 질적으로 발전하였고, 90년대로 진입하면서 과거 고급문화로 간주되던 클래식 음악이 대중화되었으며, 음악 교육기관 및 인프라가 발전한 것이 그 원동력일 것이다. 해외 페스티벌, 투어, 독주회 등 뛰어난 실력과 스타성을 지닌 한국의 연주자들을 요청하는 각종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이 장에서는 작곡, 지휘, 성악, 피아노, 현악, 관악, 체임버 등 각 분야의 1세대 음악가들부터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신진 연주자들까지 한국 연주자들의 현주소를 소개하려 한다.

 

COMPOSER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이겠지만 현대음악, 그것도 현대음악 작곡 분야는 클래식 음악의 영역에서도 가장 대중적이지 못하고 아카데믹한 분야로 손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은 예나 지금이나 예술의 가장 중요한 영역이며 이는 20~21세기에도 여전히 새로운 음악이 탄생하는 이유이다.

한국 현대음악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윤이상은 1995년 독일 베를린에서 영면에 들었다. 그 이후 국내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작곡가 중 가장 먼저 언급할 인물은 독일 브레멘 국립예술대 교수 박영희이다. 박영희는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1974년 독일 유학을 떠났다.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클라우스 후버에게 배웠고, 1978년 현악 3중주와 클라리넷을 위한 만남’(Man-Nam)으로 보스빌 작곡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94년 독일 브레멘 국립예술대학교에 주임 교수로 임명되어 작곡가이자 교육자로 유럽에서 왕성히 활동하며, 한국철학과 동양사상그리스 신화 등을 접목한 작품 세계로 현대 작곡계의 귀한 인물로 부상했다. 특히 2006년에는 세계현대음악제(ISCM)의 일환으로 그녀의 오페라 달 그림자(Mondschatten)’가 슈투트가르트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되기도 했다.

작곡가 진은숙은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박영희보다 열여섯 살 어리며, 윤이상과 박영희 다음 세대의 작곡가라 볼 수 있다. 진은숙은 이 시대가 가장 주목하는, 대중성을 지닌 현대음악 작곡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서울음대를 졸업하고 독일로 건너가 죄르지 리게티와 공부하기도 한 진은숙은 서울음대 재학시절인 1985, 작곡가로서 상대적으로 어린 20대 중반의 나이에 가우데아무스 상을 수상했다. 1988, 리게티가 함부르크 음악원을 정년퇴직하자 스승과의 관계를 자신의 존재 이유처럼 생각했던 제자들은 스승을 따랐지만, 리게티의 제자가 아닌 자신이 되고 싶었던 진은숙은 리게티를 떠나 베를린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3년 만에 펜을 들어 그녀의 대표작인 말의 유희를 썼다. 고국이 그녀를 알아본 것은 진은숙이 한국을 떠난 후 20년 넘는 세월이 흐른 뒤였다. 2004, 진은숙은 세계적인 권위의 현대음악 작곡상인 그라베마이어 상을 받았고 2005년 봄, 4년 만에 한국을 찾아 윤이상을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의 상주 작곡가로 활동했다. 2006년부터는 정명훈이 이끄는 서울시향의 상임 작곡가로 일하고 있다. 2007630일은 그녀에게, 고국에게 특별한 날이다. 뮌헨의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에서 신작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초연됐기 때문이다. 지휘자 켄트 나가노연출가 아힘 프라이어라는 거장의 손길로 세계 초연된 진은숙의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녀의 고국에 살고 있는 대중에게 21세기에도 새로운 오페라가 만들어지고 올려진다는 귀중한 사실을 깨닫게 했다.

2의 진은숙을 꿈꾸는 신진 작곡가의 등장도 이어지고 있다. 1974년 생인 박선영은 서울음대에서 백병동에게 작곡을 배운 후 1998년부터 바이에른에서 일렉트로 어쿠스틱(전자음향악)을 공부했다. 이후 이르캄(IRCAM)에서 작업하며 파리에 정착했다. 그녀는 2008년 루아요몽 재단의 후원으로 루아요몽 수도원에 작품을 설치해 유럽 현지의 주목을 받았다. 끝으로 2009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작곡 부문 우승을 차지한 전민재를 소개한다. 당시 스물세 살의 어린 나이에 학생 신분으로 1등상을 받은 이 청년의 작품은 이듬해인 2010, 피아노 부문으로 치러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곡으로 채택됐다.

CONDUCTOR

한국의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가 공립 오케스트라를 운영하고 있고, 단체마다 훌륭한 상임지휘자들과 일하고 있기에 국내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들에 대한 소개는 한국의 오케스트라섹션에서 보다 자세히 이어가도록 하겠다. 여기서는, 해외에서 지휘자로서의 커리어를 탄탄히 쌓은 후 고국으로 돌아와 활동하며 국내 음악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이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지휘자 구자범은 대학 시절 철학을 공부했다. 대학원에서도 철학을 익히던 그는 돌연 독일로 건너가 음악을 공부하고 1998년 만하임 국립음대 대학원 지휘과를 졸업했다. 이후 만하임 국립오페라극장 오페라 코치로 활동했고 하겐 시립극장을 거쳐 다름슈타트 국립오페라극장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 2005년부터 하노버 국립오페라의 카펠마이스터라는 중요한 자리에 오른 그는 2009년 한국의 광주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맡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왔다. 현재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일하고 있다. 그가 독일에서 익힌 카펠마이스터의 기질은 음악적 성향이 아닌 훈련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카펠마이스터는 오페라극장의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연 평균 150회의 오페라를 매일같이 무대에 올리고, 여기에 교향곡 무대도 병행하는 강행군을 이끄는 선두이다. 그만의 체계적인 오케스트라 정련 방식과 인문학적 소양은 한국 음악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광주시향과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실질적인 체질 개선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올해 코리안심포니 상임지휘자에 취임한 최희준은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지휘를 전공하고 2003년 전 독일 음대 지휘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1위에 오르며 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독일에서의 다양한 오페라 경험 또한 최희준이 코리안심포니의 예술감독으로 기대를 모으는 부분이다. 2006년부터 작센 주립극장에서 오펠로’ ‘코시 판 투테’ ‘토스카등을 지휘해왔고, 현재 작센 주립극장 수석지휘자로 활동 중이다.

현재 서울시향 부지휘자로 일하고 있는 여성 지휘자 성시연은 졸링겐 여성 지휘자 콩쿠르게오르그 숄티 지휘 콩쿠르를 석권하고, LA필의 구스타보 두다멜이 제1회 우승자로 선정됐던 말러 지휘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를 수상하며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6년 숄티 콩쿠르 이후 미국의 에이전트와 계약을 맺고 보스턴 생활을 시작한 성시연은 지난해까지 보스턴 심포니 부지휘자로 활동했다. 1975년생인 이 젊은 음악인은 서울예고취리히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다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지휘자로의 전향을 꿈꿨다고 한다. 그녀는 스톡홀름 왕립 음악원에서 요르마 파눌라 교수에게 지휘를 배웠다.

이들의 뒤를 바짝 따라오고 있는 더욱 젊은 피들이 있으니 지휘자 최수열과 아드리엘 김이다. 최수열은,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과 함께 현대음악 연주단체의 양대 산백으로 불리는 독일의 앙상블 모데른이 운영하는 아카데미에 합격해 그곳에서 커리어를 확장해가는 중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지휘과에서 7년간 정치용 교수를 사사했고, 한국의 대표적인 현대음악 단체인 TIMF앙상블과 자주 무대에 오른다. 아드리엘 김은 지난해 여름, 한국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견인하는 프로젝트인 디토 페스티벌을 통해 고국 무대에 공식 데뷔했다. 2009년 핀란드의 요르마 파눌라 지휘 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하며 음악계에 지휘자로서 이름을 알렸고, 그 이전에는 빈 국립음대에서 바이올린과 지휘를 함께 전공했다.

 

VOCAL

조금 먼 곳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면, 1991년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에스토니아의 사람들이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꺼내든 무기는 노래였다고 한다. 1987년부터 많게는 수만 명이 야외에 운집해 민요와 찬가를 부르기 시작하더니, 전통의 페스티벌 에스토니아의 노래가 열린 1988911일에는 당시의 전체 인구 130만 명 중 30만이 거리로 나와 자유의 선율을 불렀다. 훗날 노래하는 혁명이라 명명된 이 움직임은 에스토니아의 독립에 실질적인 밑거름이 됐다. 한국인 역시 에스토니아 사람들 못지않게 노래하기를 즐기는 민족으로 유명하다. 한국은 어느 거리에나 노래방이 있고, 가족친구회사 동료들 삼삼오오 모여 이곳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일상이다.

일제시대 서양문물이 유입되면서 한국인들만의 전통적인 가창에는 서양의 화성과 멜로디가 더해지기 시작했다. 서양적인 의미의 직업 성악가가 등장했고, 그들의 삶의 터전이 될만한 오페라단과 합창단은 대부분 해방 이후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오페라 기점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해방 후인 1948116일 이인선이 조직한 조선오페라협회 주최 공연인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한국 최초의 오페라 무대로 본다. 이 최초의 무대에서 비올레타를 부른 소프라노는 김자경이다. 김자경은 1968년 한국 최초의 민간 오페라단이라 평가되는 김자경 오페라단을 창단했다. 국립오페라단은 이보다 6년 앞선 1962, 국립중앙극장 소속 기관으로 발족됐다.

한국의 두 번째 개화기1980년대 찾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공연예술계는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기념한 문화 축전을 통해 세계 예술계 흐름을 동시대적으로 누리는 경험을 거의 처음으로 해볼 수 있었다. 앞서 소개한 김자경이 한국 오페라계 초창기를 견인한 전설적인 인물이었다면,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전반에 걸쳐 한국 대중에게 성악 예술의 아름다움을 알린 사람은 세 명의 디바였다. 신영옥조수미홍혜경, 이들 트로이카는 대한민국 광복 50주년이었던 1995815일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공연에 참가하기 위해 동시에 내한하기도 했었다. 신영옥은 1988년 미국 스폴레토 음악제에서 루살카의 숲의 요정, 조수미는 1986년 트리에스테 베르디 극장의 리골레토질다, 홍혜경은 1981년 스폴레토 음악제를 거쳐 1984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모차르트 티토 왕의 자비중 세르빌리아로 각각 국제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홍혜경은 1986년 메트로폴리탄 미미로 메트의 프리마돈나로 급부상했고, 신영옥은 1991년 홍혜경이 몸이 아파 서지 못한 무대에서 대신 질다를 부르며 스타덤에 오른다. 한편 1989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데뷔한 조수미가 1993년 다시 잘츠부르크 무대에서 노래한 밤의 여왕은 아직도 조수미의 수식어로 남아있다. 이들 미미질다밤의 여왕의 먼 곳에서의 활약이 고국에 전해지고 또 내한도 잦아지면서 우리 대중은 어느새 오페라 가수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된 것이다.

21세기 들어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한국 성악가들의 활약은 더욱 두드러져 가고 있다. 이제부터 언급할 솔리스트들뿐만 아니라, 많은 신예 성악가들이 각국 오페라극장의 앙상블 단원으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유럽 오페라극장 소속 가수로 활동하여 세계적인 성악가로 자리매김한 대표적인 인물로 먼저 연광철을 꼽을 수 있다. 연광철은 1993년 플라시도 도밍고가 주최하는 국제 성악 콩쿠르인 오페랄리아에서 우승하고, 곧바로 바렌보임이 지휘하는 피델리오에 발탁되는 행운을 안았다. 이후 르네 야콥스마르크 민코프스키와 같은 거장들과 작업했다. 1994년에 베를린 슈타츠오퍼에 입단, 10년간 그곳에서 노래했다. 그의 주요 레퍼토리 가운데 바그너를 빼놓을 없는데, 바그너의 성지인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무대에는 1996뉘르베르크의 명가수중 야경꾼 역으로 데뷔했고, 2007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과 5년 간의 출연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부터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교육자로서의 삶을 병행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굵직한 오페라 무대에 오른 한국인 성악가들을 소식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는데 이중에서 가장 자주, 가장 강렬한 인상으로 유럽발 기사를 장식하는 가수는 소프라노 임선혜이다. 임선혜는, 어느 날은 세르빌리아로 분해 왕의 청혼을 당당히 거절하고, 또 어느 날은 순진하지 않은 시골처녀 체를리나가 되어 돈 조반니를 오히려 농락한다. 그 뿐인가. 우리에게 제목조차 생경한 오페라 인내심 많은 소크라테스를 소개하고, 나체의 여성 연기자와 호흡을 맞추는 파격적인 연출에 능청스럽게 응하기도 한다. 소프라노 임선혜의 유럽 데뷔는 1999-2000년 즈음에 이뤄졌다. 고음악 무대를 중심으로 꾸준히 활동해오던 임선혜가 더욱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6년 인스부르크 고음악 페스티벌에서 르네 야콥스 지휘의 돈 조반니중 체를리나 역을 부르면서부터다. 르네 야콥스와 일한 지 2년 만에 이뤄진 무대로, 이 프로덕션은 인스부르크 페스티벌 이후 바덴바덴 페스티벌에도 올라 유럽 전역에 생방송됐고, 음반 녹음 전에 파리와 브뤼셀에서도 공연됐다. 당시 임선혜가 부른 체를리나는 보통의 오페라 무대에서 우리가 만나온 청순하고 순진한 시골처녀가 아닌 아주 영리한 체를리나였다. 연출을 맡은 뱅상 부사르Vincent Boussard가 부르는 사람의 성격에 맞춰 체를리나를 더욱 영악하고 똘똘한 캐릭터로 설정했다고 하니, 유럽 오페라계에 임선혜가 얼마나 당찬 캐릭터로 자리매김했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소프라노 서예리 역시 주목할 만하다. 1976년 생인 서예리는 서울음대 졸업 후 베를린 음대에 진학, 독일로 건너간 지 1년만인 2001년 학생 신분으로 베를린 방송합창단에 입단했다. 아르농쿠르래틀나가노야노프스키 등 거장들의 지휘 아래 다양한 레퍼토리를 체득해가던 서예리가 고음악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근 계기는 르네 야콥스와의 마스터클래스를 통해서다. 작은 인연이 발전되어 야콥스의 지휘로 2003년 인스부르크 고음악 페스티벌에서 몬테베르디 오르페오의 닌파 역을 불렀고, 20052007년 베를린 슈타츠오퍼 몬테베르디 시리즈에 초청되는 행운을 얻었다. “느낌만으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고음악을 공부해 보자라고 다짐했을 때도 서예리는 야콥스의 지휘 아래 몬테베르디의 마드리갈을 부르고 있었다. 그렇게 쌓여진 고음악에 대한 동경은 그녀를 스위스 바젤 스콜라 칸토룸으로, 벨기에 콜레기움 보칼레로 이끌었다. 서예리가 고음악에 매진할수록 고음악계는 물론이고 아카데믹한 현대음악계에서도 러브 콜이 밀려왔다. 결국 서예리는 2006년 합창단에 사표를 내고 베를린 준공무원으로서의 신분과 작별했다. 현재는 세계적인 매니지먼트사인 IMG Artists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 2010, 세계적인 앙상블인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 첫 내한의 파트너로 고국 무대에서 노래해 깊은 인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외에도 소프라노 박은주강경애박현주임세경, 테너 김우경김재형강요셉박지민, 바리톤 한명원, 베이스 사무엘 윤 등 이제는 손가락으로 꼽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세계 오페라 및 콘서트 무대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선보이는 한국인 성악가들의 숫자는 많아졌다. 여기에 세 명의 이름을 특별히 추가하자면, 2011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소프라노 홍혜란, 차이콥스키 콩쿠르 남녀 성악부문을 석권한 박종민서선영이다.

PIANO

한국 피아니스트의 계보는 한국 최초 국제 콩쿠르 우승이란 기록을 남긴 한동일을 기점으로 시작된다. 6.25세대였던 한동일은 어린 시절 미 제5공군 기지에서 매일 원하는 만큼 피아노를 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면서 해외 무대로 나가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미군 VIP행사에서 연주를 하던 중 제5공군 사령관 새무엘 앤더슨 중장의 눈에 띄어 1954년 미군 군용기를 타고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된 것이다. 줄리아드 음악학교에서 수학한 그는 1965년 레벤트리트 피아노 콩쿠르 우승으로 세계 음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뉴욕 필·로열 필 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 무대를 가지며 활발히 활동했다.

한국 음악계의 대모로 불리는 신수정과 이경숙은 연주자로서의 명성 뿐 아니라 명망 높은 교육자로 활약하며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다. 신수정은 6.25전쟁 당시 부산 천막 가교사에서 열린 제1회 이화경향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서울대 음악대학을 거쳐 빈 국립 음악아카데미, 피바디 음악 대학원을 수학하며 요제프 디힐러, 빌헬름 켐프 등을 사사했다. 야노스 스타커, 주제페 디 스테파노 등과 함께 무대에 오르며 주목받았던 그녀는 고국으로 돌아와 26세 최연소 나이로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됐으며 여성 최초로 서울대 음대 학장을 역임해 화제를 낳았다.

커티스 음악원에서 미에치슬라프 호로조프스키와 루돌프 제르킨을 사사한 이경숙은 1967년 제네바 콩쿠르 입상,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콘체르토 오디션 우승 등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녀는 1987년 한국인 최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 1989년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 연주, 1991년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를 달성한 화려한 이력을 바탕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 음악원장, 연세대 음악대학 학장을 역임하며 후진 양성에 정진했다.

한국 1세대 피아니스트들의 뒤를 잇는 중진 연주가들의 행보는 현재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의 교수로 활약한 두 피아니스트 강충모와 김대진이 대표적인 예다. 강충모는 서울대 음악대학과 피바디 음악원을 졸업한 후 1993년 한국예술종합학교 개교 이후부터 음악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김태형, 김규연 등 많은 후학들을 길러왔다. 그는 1999년을 시작으로 바흐 건반 음악의 전곡 연주를 5여 년에 걸쳐 도전하며 한국 음악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20119월부터 줄리아드 음악원 피아노과 최초의 동양인 교수로 임용되어 눈길을 끌었는데, 이는 한국 피아노계의 세계적인 위상을 입증한 결과이기에 더욱 의미가 컸다.

손열음, 김선욱 등을 길러낸 명 스승 김대진은 교육자이자 피아니스트, 그리고 지휘자로 전방위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줄리아드 음악학교 재학 시절인 1985년 클리브랜드 콩쿠르 우승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 하루 동안 베토벤 협주곡 전곡, 3년 동안 모차르트 협주곡 전곡 등을 연주하는 프로젝트에 도전해 화제를 일으켰다. 이후 지휘자로 변신해 자신만의 새로운 음악세계를 개척하였고, 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활약하며 한국 지역 오케스트라의 수준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활발한 음반 활동을 중심으로 맹활약하고 있는 두 여제 백혜선과 서혜경도 한국 피아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수학한 백혜선은 199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1위 없는 3,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은상 등을 차지하며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1996EMI와 전속계약을 맺은 후 그녀가 레코딩한 데뷔’(1998), ‘사랑의 인사’(1999), ‘혜선백 플레이즈 리스트-사랑의 꿈’(2003) 3개의 앨범은 스테디셀러를 기록했다.

줄리아드 음악학교 출신인 서혜경은 1980년 부소니 콩쿠르 우승, 1983년 뮌헨 콩쿠르 2위를 차지하며 주목받았고, 1988년 카네기홀이 선정한 올해 세계3대 피아니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화려하게 비상했다. 수년간 암 투병으로 활동을 중단해 음악계에 아쉬움을 남겼던 그녀는 2008년 다시 무대에 올라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이후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로 러시아 지휘자 알렉산드르 드미트리예프가 이끄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믹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전곡, 차이콥스키 협주곡 전곡 녹음에 도전하며 카리스마 넘치는 자신의 매력을 세상에 전했다.

한편 2005년 쇼팽 콩쿠르에서 2위없는 공동 3위를 나란히 차지한 임동민·임동혁, 이 두 형제의 등장은 한국 피아노 3세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다. 네 살 터울인 이들 형제는 1996년 영 쇼팽 콩쿠르에서 각각 1,2위를 수상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함께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레프 나우모프 교수를 사사한 후 하노버 국립음대로 진학했다. 각각의 커리어를 살펴보면, 임동민은 2001년 부소니 콩쿠르 3, 2002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5위를 차지했으며, 고국으로 돌아와 연주자와 교육자로 활동 중이다. 임동혁은 2000년 하마마쓰 콩쿠르 2, 2001년 롱티보 콩쿠르 우승을 차지했는데 2003년에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3위를 차지했지만 심사과정에 의의를 제기하며 수상을 거부하는 뚝심을 보이기도 했다. 2007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4위를 기록했던 그는 2001EMI레이블로 쇼팽 스케르초 2, 발라드 1번 등이 수록된 데뷔 음반을 발매해 황금 디아파종상의 영예를 얻은 바 있다.

이들의 뒤를 이어 시작된 젊은 국내파 연주자들의 비상은 한국 클래식의 위상을 당당히 증명해준다. 그 대표주자인 손열음은 1997년 영 차이콥스키 콩쿠르 2위를 시작으로 2000년 에틀링겐 콩쿠르와 2002년 비오티 콩쿠르 우승을 차지했으며 2009년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 2위를 수상해 화제가 되었다. 2011년에는 차이콥스키 콩쿠르 2위의 영예를 안으며 자신의 입지를 확실히 굳혔다. 17세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수석 입학한 그녀는 2007년 독일로 건너가 하노버 음악대학에 진학했다.

2005년 클라라 하스킬 콩쿠르 우승을 시작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김선욱 역시 한국예술종합학교가 배출한 국내파 인재다. 특히 2006년 리즈 콩쿠르 우승은 해당 콩쿠르 역사상 첫 아시아인 우승자이자 최연소 우승자란 기록으로 화제를 낳기도 했다. 현재 그는 영국 왕립음악원에서 지휘 공부를 하며 자신의 스승인 김대진의 음악적 행보를 따르고 있다.

최근 패기 어린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두드러진 활약은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큰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1985년생인 김태형은 독일 뮌헨 국립음대에서 명 피아니스트 엘리소 비르살라제를 사사하고 있는데, 2006년 하마마쓰 피아노 콩쿠르 3, 2007년 롱 티보 콩쿠르 4위란 기록이 그의 재능을 뒷받침해준다. 1989년생인 김다솔은 2005년 나고야 콩쿠르 우승을 시작으로 2008년 슈만 콩쿠르 3, 2010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6, 2011ARD 콩쿠르 3위를 차지하며 세계적인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1992년생인 지용은 2001년 뉴욕 필하모닉 주최 영 아티스트 콩쿠르에서 역사상 최연소로 우승하며 세계무대로 도약했다. 쿠르트 마주어 지휘아래 뉴욕 필과의 협연으로 링컨 센터에서 뉴욕 데뷔를 했으며, 2005년 아스펜 페스티벌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의 활약을 펼쳤다.

1994년생인 조성진은 한국 피아노계의 떠오르는 샛별로 세간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중학교 때 이미 모스크바 청소년 쇼팽 콩쿠르, 하마마쓰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그의 이력은 한국 클래식 교육의 발전을 입증해준다. 201117세의 나이로 차이콥스키 콩쿠르 3위란 기록을 세우며 어린 나이에도 성숙한 음악성을 보여주고 있는 그의 재능은 세계 속에 더욱 빛을 낼 한국 피아니스트들의 활약을 기대케 만든다.

 

 

STRING INSTRUMENT

STRING

한국의 바이올리니스트 중 현재 세계 주요 무대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 중인 연주자는 사라 장이다. 4세 때 바이올린을 배운 그녀는 8세 때 받은 오디션에서 지휘자 주빈 메타와 리카르도 무티로부터 뉴욕 필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즉석에서 요청받을 만큼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다. 1992EMI에서 발매된 그녀의 첫 음반은 10세 때 녹음한 음반으로 세계 최연소 레코딩 기록을 세우기도 했으며 이후 EMI 대표 바이올리니스트로 자리매김하여 많은 레코딩을 남겼다. 최근 몇 년 사이 주목할 만한 레코딩으로는 브루흐브람스쇼스타코비치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협주곡들, 그리고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비발디의 '사계' 등이 있다. 줄리아드 음악학교에서 도로시 딜레이·강효를 사사한 사라 장은 1999년 에이버리 피셔상을 수상해 연주가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렸으며, 베를린 필·로열콘세르트헤보 오케스트라 등과의 협연 등 연간 150여 회의 공연을 펼치며 젊은 거장으로 군림하고 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강동석·김영욱·정경화 등이 해외 무대에서 한국 바이올리니스트의 위상을 널리 알려주었다. 줄리아드 음악학교를 거쳐 커티스 음악원에서 이반 갈라미안을 사사한 강동석은 몬트리올 콩쿠르·칼 플레슈 콩쿠르·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등 세계 3대 바이올린 콩쿠르를 석권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고, 샤를 뒤투아·쿠르트 마주르 등의 거장들과 함께 세계무대를 누볐다.

12세 때 한국을 방문한 미국 커티스 음악원의 교장 루돌프 제르킨의 눈에 띄어 유학을 떠나게 된 김영욱은 1965년 메리위던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베를린 필, 헝가리 부다페스트 교향악단 등과 협연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떨쳤다. 그는 첼리스트 요요마, 피아니스트 에마누엘 엑스와 함께 엑스 김마 트리오를 결성해 실내악 연주에 박차를 가하기도 했다.

줄리아드 음악학교에서 이반 갈라미언을 사사한 정경화는 1967년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1970년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한 런던 교향악단과 협연하며 유럽 무대에 데뷔한 그녀는 세계 음악계의 인정을 받아 2007년부터 줄리아드 음악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됐다. 그녀는 1985년 부임한 강효에 이어 한국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줄리아드 음악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지난 2010년에는 정경화가 세계적인 음반 레이블 데카에서 첫 음반을 내놓은 지 40주년을 맞아 유니버설뮤직이 데카와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발매되었던 정경화의 모든 앨범을 모은 전집 박스 정경화 데뷔 40주년 기념 한정 에디션을 출시하기도 했다.

한편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김남윤은 권혁주·신현수·클라라 주미 강 등 한국을 대표하는 차세대 바이올리니스트를 배출했다.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이반 갈라미언·펠릭스 갈리미르를 사사한 김남윤은 1974년 스위스 티보바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고국으로 돌아와 교수의 길을 걸으며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

최근 세계 유수 콩쿠르에서 선전하고 있는 젊은 한국의 바이올리니스트의 활약은 주목할 만하다. 대표적인 예로 7세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예비학교에 입학해 김남윤을 사사한 권혁주가 있다.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에두아르드 그라치를 사사한 그는 화려한 기교를 주무기로 1997년 차이콥스키 청소년 콩쿠르 역대 최연소 2, 2004년 파가니니 콩쿠르와 칼 닐센 콩쿠르 우승, 2005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6위 등의 이력을 세웠다.

한국 바이올린계의 차세대 주자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여류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약진이다. 신예 신현수는 2008년 롱 티보 콩쿠르에서 우승을 비롯해 오케스트라상, 리사이틀상, 파리음악원 학생들이 주는 최고상 등 4관왕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특히 그녀는 한 해 일본에서 100회 정도의 공연을 열만큼 일본에서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4세 때 독일 만하임 음악대학 예비학교에 최연소로 입학, 5세 때 함부르크 심포니와 협연 무대를 가진 클라라 주미 강은 2007년 티보 바가 콩쿠르 3, 2009년 하노버 콩쿠르 2, 2010년 센다이 콩쿠르·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 우승의 이력을 자랑한다.

정경화의 뒤를 잇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라 평가받고 있는 김수연은 16세의 나이에 2003년 레오폴트 모차르트 콩쿠르 우승을 거머쥐었다. 9세부터 뮌스터 음대에서 헬게 스라토 사사한 그녀는 2006년 하노버 콩쿠르 우승, 2009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4위 등을 차지하며 자신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도이치 그라모폰과 모차르티아나앨범을 발매하며 세계 최정상급 연주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김수연의 비상은 한국 클래식계에 새로운 역사를 더해주었다.

첼로 또한 바이올린과 함께 국제적인 스타급 연주자들이 세계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먼저 한국의 대표하는 첼리스트로는 장한나를 꼽을 수 있다. 2007년에 성남 국제청소년 관현악 페스티벌에서 지휘자로서 데뷔 무대를 가진 그녀는 11살에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국제 콩쿠르 대상과 현대음악상을 수상하면서 세계 음악계를 놀라게하며 동시에 로스트로포비치의 총애를 받기 시작했다. 이후 주세페 시노폴리·로린 마젤·리카르도 무티·샤를르 뒤트와·세이지 오자와 등 세계적인 거장들과 협연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첼리스트로서 음악의 깊이를 더하는 데 철학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그녀는 하버드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자신의 음악세계를 지휘의 영역으로도 넓혀가고 있다.

현재 독일 엣센 폴크방 국립음악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첼리스트 조영창은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콩쿠르와 카잘스 첼로 콩쿠르 등에 입상하며 세계 무대에서 각광받았다. 1977년 제네바음악콩쿠르에서 누나인 바이올니스트인 조영미·피아니스트 조영방과 함께 트리오 부문에 입상하기도 한 그는 국외에서 후진양성에 힘쓰며 동시에 국내에서 화음 쳄버오케스트라에서 리더로 활동하며 한국 실내악계의 발전을 위해 힘쓰기도 했다. 명 첼리스트 야노스 슈타커의 애제자인 첼리스트 양성원은 파리 음악원과 인디애나 대학에서 수학하고 현재 연세대 음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0EMI를 통해 발매한 첫 음반인 코다이 작품집은 그라모폰지로부터 극찬을 받았고, 2005년에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을 녹음하여 선보였으며, 2007년에 피아니스트 파스칼 드봐이용과 함께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집을 발표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독주와 실내악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해온 그는 2009년 제4회 대원음악연주상과 제1회 객석예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근 젊은 연주자들의 약진도 활발하다. 첼리스트 이정란은 정명훈이 이끄는 서울시교향악단에서 부수석 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파블로 카잘스 콩쿠르·모리스 장드롱 콩쿠르에 입상하였고, 2006년 윤이상 음악 콩쿠르에 입상하며 각광을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를 거쳐 현재 프린스턴대에서 분자생물학 박사과정을 밟으며 과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첼리스트 고봉인은 1997년 열 두 살의 나이로 제3회 차이콥스키 청소년콩쿠르 첼로부문에 입상했다. 2008년 평양에서 열린 윤이상음악회에 참가해서 윤이상관현악단과 윤이상의 첼로협주곡을 협연하여 이목을 끌기도 했다. 1994년생인 첼리스트 이상은은 요한슨 청소년 현악 콩쿠르의 첼로 부문과 차이코프스키 청소년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했다. 독일 크론베르크 첼로 페스티벌에서 '올해의 청소년 첼리스트'로 선정돼 폐막일에 기념연주회를 하기도 한 그녀는 첼리스트 정명화의 총애를 받는 첼리스트이다.

비올리스트의 경우는 독주자보다 앙상블에 많은 비중을 두고 솔리스트로 입지를 다지는 연주자로 리처드 용재 오닐과 최은식을 꼽을 수 있다.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수학한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은 앙상블 디토의 리더로 잘 알려져 있다. 뉴욕 링컨센터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세종솔로이스츠 주자를 역임한 그는 길 샤함·조슈아 벨·정경화 등과 같은 명 연주자는 물론 에머슨 및 줄리아드 현악 사중주단 등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다양한 실내악 경력을 쌓아왔다. 국제적인 솔리스트로도 인정받아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 지휘로 런던 필하모닉, 미겔 하타 베다야의 지휘로 LA 필하모닉 등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비올리스트 최은식은 16세 때 도미하여 커티스 음악원을 거쳐 보스톤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에서 수학했다. 보르메오 4중주단·에머넷 현악 4중주단 멤버를 역임했으며 젊은 시절부터 신시네티 컬리지 뮤직 콘서바토리 교수 및 보스톤 뉴 잉글랜드 음악원의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동앙국내 현악기군에서 가장 주목 받지 못하던 더블베이스는 최근 독일 슈페르거 콩쿠르, 러시아 쿠세비츠키 콩쿠르, 독일 마르크노이키르헨 콩쿠르에 입상한 성민제로 인해 부상하고 있다.

 

 

WIND INSTRUMENT

오케스트라의 현악기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관악기군은 레퍼토리에 따라 솔리스트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최근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젊고 뛰어난 주자들이 국내 오케스트라로 영입되고 있다. 이러한 예에 해당되는 대표적인 연주자로는 서울시교향악단의 채재일, 그리고 김홍박을 꼽을 수 있다. 클라리네티스트 채재일은 현재 정명훈이 이끄는 서울시교향악단의 수석주자로 활약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 또한 서울시향에서 수석으로 재직한 고() 채일희로 어릴적에 아버지로부터 클라리넷을 배웠고, 예원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수학했다. 국제 클라리넷 협회 콩쿠르와 제네바 콩쿠르에 입상하여 국제무대에서 주목받았으며, 필라델피아·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밀워키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에서 활동하다가 서울시향 클라리넷 수석으로 발탁되었다. 호르니스트 김홍박은 목관악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한 금관악기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입지를 다지는 연주자다. 김홍박은 14세에 호른을 시작하여 19세의 나이로 동아콩쿠르를 석권함과 동시에 그 해에 국제호른협회에서 주최하는 Philip Farkas Award에서 2위에 입상하며 국제무대에서 인정을 받았다.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수학하는 동안 실내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빌라 무지카, 구스타프 말러 아카데미 등에 장학생으로 발탁되어 활동했고, ‘Live Music Now-Yehudi Menuhin’의 연주자와 장학생으로 발탁되어 유럽의 다양한 페스티벌에서 초청연주회를 갖기도 했다.

플루트에서는 여성 연주자의 약진이 눈에 띈다. 커티스 음대와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수학한 플루티스트 최나경은 22살에 186: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2006년에 미국 신시내티 교향악단의 부수석으로 입단하였다. 2008종신 단원(Tenure)’ 자격을 획득한 그녀는 2009년 런던 위그모어홀에서 바흐프랑크의 소나타와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작곡가 윤이상의 가락을 연주하기도 했다. 정통 레퍼토리와 대중적인 작품들을 섭렵하는데 힘쓰는 가운데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되는 해에 빈 필하모니 수석 하피스트인 자비에 드마이스트 마이어와 ‘Jasmine Choi Plays Mozart’(Sony), 이후에 환타지’(SONY)를 발매하기도 했다. 플루티스트 윤혜리는 국내 관악기 연주자들의 국제적인 활약이 두드러지지 않던 1992년 스위스 제네바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3위에 입상하며 한국의 관악계의 가능성을 널리 알린 연주자다. 커티스 음대·파리 국립 음악원·스위스 바젤 뮤직 아카데미·맨해튼 음악대학에서 수학한 그녀 또한 마이클 틸슨 토마스가 상임 지휘자를 맡고 있던 미국 마이애미 뉴월드 심포니와 스페인 테네리페 심포니 등에서 활동하며 오케스트라 주자로서 음악적 역량을 단련했다. 국내에서 ‘Elegia(Samsung Classic)’를 출반하기도 한 윤혜리는 2005년부터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후진양성에 힘쓰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해외우수연주자들이 유입하고 그로 인해 교육환경이 개선되면서 관악기를 배우는 학생들의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또한 청중이 음악을 즐기는 방식이 다각화하면서 리코더 등과 같은 다양한 악기들도 조명받고 있다. 1996년 생인 클라리네티스트 김한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클라리넷을 시작하여 2007년 금호영재콘서트에서 독주회를 가졌다. 클라리넷은 피아노나 현악기에 비해 어린 나이에 활동을 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김한이 2008년 일본 클라리넷 페스티벌에 최연소 독주자로 초청된 것과 예원학교 재학시절 제2회 베이징음악콩쿠르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인 최고 유망주상을 수상한 것은 큰 화제가 되었다. 김한은 현재 영국 이튼칼리지에 재학 중이며, 한국에서 최연소 금호아시아나 솔로이스츠 단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2009년 제3회 몬트리올 국제 리코더 콩쿠르에서 공동 1위에 입상 후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리코더니스트 권민석은 희귀악기에 속하는 리코더와 다양한 레퍼토리를 국내에 선보이는 연주자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음악이론을 수학 후, 네덜란드로 유학하여 헤이그 왕립 음악원에서 수학했다. 현재 그는 본인이 중심이 된 앙상블 콩코르디 무지치를 이끌고 있으며, 리코더의 중요레퍼토리인 비발디·만시니·스카를라티를 담은 음반을 발매하며 국내 관악계 내에서 보기 드문 리코더 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CHAMBER

한국에서 실내악에 대하는 관객의 인식은 솔리스트에 대한 환호와 오케스트라에 대한 관심에 비해 많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해외 유명 콩쿠르에서 입상한 솔리스트들이 자유롭게 실내악팀을 구성하고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이며 한국의 실내악계를 상승시키고 있다.

현재 바이올니스트 김민이 이끄는 서울바로크합주단은 1965년에 서울대학교 전봉초 교수에 의해 창단되어 한국의 실내악 문화를 활성화하는데 많은 역할을 한 악단이다. 세계 유명 연주자와 같이 수백 회에 달하는 무대를 만들어온 서울바로크합주단은 펜데레츠키와 같은 국내외 정상의 작곡가들에게 창작곡을 위촉하여 의욕적으로 초연함으로써 국내 창작음악의 활성화를 주도하기도 했다. 1999년에 파리에서 주빈 메타가 지휘한 유네스코 평화 콘서트와 2000UN본부에서 열린 UN Staff Day 콘서트에서 연주한 일을 계기로 ‘UN 공식 평화의 실내악단으로 선정되었으며, 독일 국제 헨델 페스티벌, 마르크 그래플러 페스티벌, 룩셈부르크 에히터나흐 페스티벌 등 유럽 전역을 무대로 활발한 해외초청공연에 참여하고 있다. 2011년에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들이 대거 참가한 루마니아의 국가적 축제, 에네스쿠 페스티벌에서 현대 작품들을 선보여 호평 받았다.

줄리아드 음악원의 바이올린 전공 교수인 강효가 이끄는 세종솔로이스츠는 뛰어난 기량과 음악성을 가진 젊은 연주가들로 구성된 현악 실내악단으로 1995년 뉴욕에서 창단되었다.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사라 장·김지연 등을 비롯하여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기도 한 강효 교수는 한국인 최초로 줄리아드 음악학교 교수로 임명되어 화제가 된 음악가이도 하다. ‘한글을 비롯하여 다양한 문화 창제를 주창한 조선시대 왕인 세종의 이름을 내건 세종솔로이스츠는 줄리아드 음악원 출신의 한국인 및 한국인 2세를 중심으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연주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1997년부터는 아스펜 음악제의 상임실내악단으로 초빙되어 매 여름 세종 솔로이스츠 시리즈를 선사하고 있으며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블라디미어 펠츠만, 바이올리니스트 길샤함·초량린·사라 장, 기타리스트 샤론 이스빈, 첼리스트 정명화 등 세계적인 명연주가들과 협연무대를 갖기도 했다.

최근 한국 실내악계에서 도드라지는 특징 중 하나는 남성 솔리스트로 구성된 실내악단의 활약이다. 고정화된 색채를 갖기보다는 연주회마다 다양한 선곡과 그에 걸맞은 멤버를 자유롭게 영입하면서 다양한 무대를 보여주는 가운데 대중과의 호흡하는 데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의 첫 출발은 MIK앙상블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Made In Korea’의 약자인 MIK의 이름을 내걸고 2003년에 첫 모습을 드러낸 MIK앙상블의 멤버진은 화려했다.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바이올리니스트 김수빈, 뵈젠도르퍼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김정원,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비올리스트 김상진, 파울로 콩쿠르에서 입상한 송영훈 이상 4명이다. 각자 세계 각국에서 정상급 아티스트로 바쁜 활동을 하는 가운데서도 매년 몇 번씩 모여 MIK앙상블의 이름으로 꾸준히 관객들과의 만남을 갖고 있다. 보다 젊고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을 추구하는 앙상블로는 디토를 꼽을 수 있다. 비올리니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을 리더로 하여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피 재키브, 피아니스트 지용, 첼리스트 마이클 니콜라스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디토는 한국 클래식음악계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는 중이다. 2007년을 시작으로 젊은 연주자들의 유동적이고 자유로운 영입으로 다양한 레퍼토리는 물론 기존의 클래식음악계에서 볼 수 없었던 테마가 담긴 이색적인 음악회를 선보이며 팬층을 두텁게하고 있다. 그동안 바이올리니스트 자니 리·슌스케 사토, 첼리스트 패트릭 지, 피아니스트 이윤수·임동혁, 더블 베이시스트 다쑨 장이 합류하여 슈베르트·슈만·브람스 등의 레퍼토리를 선보였으며, ‘사랑’ ‘보헤미안과 같은 테마를 선정하여 관객의 다양한 음악적 욕구를 만족시켜주었다. 매진사례와 오빠부대를 클래식공연장에 도입시킨 디토는 2010년에 활동 영역을 일본으로 확장하여 도쿄국제포럼과 오사카 심포니홀 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루며, 세계 2위 규모를 자랑하는 일본 클래식 시장에 진출하여 한국 연주자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세계시장으로 나아가고 있다.

노부스 콰르텟은 2007년에 결성된 앙상블로 창단 당시 멤버들의 평균 나이는 23세로 젊은 편이지만, 실력은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저력 있는 앙상블이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을 주축으로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 비올리스트 이승원, 첼리스트 문웅휘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2008년 오사카 실내악 콩쿠르, 2009년 리옹 실내악 콩쿠르에 입상하여 당당히 한국의 이름을 알리며 한국의 실내악의 세계진출의 밝은 미래를 제시하기도 했다.

 

 

 

3장 한국의 오케스트라

 

1926년 중앙악우회의 창단으로 시작된 한국 오케스트라의 역사는 오늘날 한국 클래식 음악의 저력을 세계 속에 알리는 큰 줄기로서 기능한다. 그 선두에는 2010년 유럽 4개국 투어에 이어 2011년 도이치 그라모폰과 계약을 맺은 서울시립교향악단(1948년 창단), 201010월 미국 카네기홀과 케네디센터 공연, UN창설 65주년 기념 콘서트 무대를 성황리에 마친 KBS교향악단(1956년 창단)이 자리한다. 이어 국내 최초로 베토벤 교향곡 전곡 녹음을 한 강남 심포니 오케스트라(1997년 창단)와 플라시도 도밍고·스팅 등의 내한 공연 연주를 도맡았던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1985년 창단)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한국 오케스트라의 현주소는 2000년대 이후 양적·질적 성장을 거듭한 지역 오케스트라의 활약으로 더욱 다채로워졌다. 2009년 카네기홀 연주회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했던 수원시립교향악단, 한국 최초로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에 도전한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을 주축으로 부산·광주·대전·대구 등 각 시·도를 대표하는 악단들이 한국 오케스트라의 성장을 가늠케 한다.

 

한국의 오케스트라들은 최근 다양해진 대중의 취향과 한국 클래식 팬들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 다양한 레퍼토리에 도전하면서 자신들만의 음악적 색채를 다듬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는 서울시향·부천 필의 말러 사이클, 수원시향의 베토벤 시리즈, 제주도립의 부르크너 전곡 연주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는 오케스트라 개별의 발전이며 동시에 넓게는 한국의 클래식의 다양화를 의미하고 있다. 이처럼 현재 활발한 음악활동을 전개하며 한국 클래식 음악의 저변을 확대하고 있는 각 시·도 대표 24개의 오케스트라를 선정, 이들의 활약을 통해 한국 오케스트라의 현주소를 살펴보았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서울시향은 서울교향악단이란 명칭으로 1948년 창단되었으며, 초대 상임지휘자 김생려 이후 김만복박은성곽승을 거쳐 현재는 정명훈이 예술감독상임지휘자를 맡고 있다. 2005년 재단법인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설립하며 독자적인 단체로 독립했으며, 폭넓은 레퍼토리를 바탕으로 연간 130여회의 공연을 가지며 명실공히 한국의 대표 악단으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부지휘자 성시연을 비롯해 아릴 레머라이트에이빈 오들란헤수스 로페스 코보스 등 세계적 명성의 객원 지휘자와 코티에 카퓌송넬손 괴르너알반 게르하르트 등의 협연자와 함께하는 마스터피스 시리즈등의 정기공연을 통해 한국 클래식 음악계를 주도하고 있다. 또한 그라베마이어상 수상자인 상임작곡가 진은숙이 기획하는 아르스 노바 시리즈는 해외에서도 보기 드문 프로그래밍으로 현대음악의 진수를 소개하고 있다. 2010년 이탈리아독일체코러시아 등 유럽 4개국 9개 도시 투어에 이어 2011년 에든버러 페스티벌 등 유럽 페스티벌 투어를 통해 현지 언론과 평단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한편 2011년에는 도이치 그라모폰과 5년 동안 매년 2장의 음반을 출시하는 계약을 맺어 드뷔시, 라벨’ ‘말러 교향곡 1앨범을 출시했다.

홈페이지 http://www.seoulphil.or.kr

 

 

KBS교향악단

KBS교향악단은 한국방송공사 소속기관으로 19561220일 창단되었다. 이강숙김만복김동성 등이 총감독을 지냈고, 초대 상임지휘자 임원식을 필두로 홍연택원경수오트마 마가정명훈드미트리 키타옌코가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 5년간 공석에 이어 함식익이 상임지휘자로 위촉되어 현재 악단을 이끌고 있다. 이 외에 발터 길레센과 모세 아츠몬박탕 조르다니아박은성곽승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이 수석객원지휘자로 활약한 바 있다. 연간 28회에 달하는 정기연주회를 비롯해 연간 80회 이상의 연주회를 진행하고 있다. 프로 오케스트라로서 오랫동안 한국의 대표적인 교향악단으로 이름을 알려온 악단이며 동시에 공영방송사 소속 오케스트라로서 우리나라 교향악의 저변 확대 및 발전에 기여해왔다는 자부심 역시 대단히 크다. KBS교향악단은 그동안 미국동남아중국일본독일 등지의 해외 연주회에서 호평을 받아왔으며, 특히 20008, 북한 조선국립교향악단과 함께 남북교향악단 합동연주회를 개최해 국민적인 관심을 받은 바 있다.

홈페이지 http://kbsso.kbs.co.kr

 

수원시립교향악단

수원시향은 1982년 송태옥을 초대 지휘자로 하여 수원시민회관에서 창단됐다. 이후 고() 정두영김몽필금난새박은성이 수원시향을 이끌었으며, 현재는 김대진이 제6대 상임지휘자로 자리하고 있다. 미하일 페투호, 존 오코너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의 협연 무대를 비롯해 정기연주회와 기획연주회 등 연간 60회 이상의 공연을 펼치고 있는 수원시향은 아시아 오케스트라 위크 오사카 심포니홀 초청연주, 독일 에케스 하우젠 국제 환경 뮤직페스티벌 초청 4개 도시 순회 연주회 등을 통해 해외 무대로 발을 넓혔다. 특히 2009년 뉴욕 카네기홀에서 가진 연주회는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수원시향의 국제적인 명성을 입증하는 동시에 한국 지역 오케스트라의 화려한 비상을 널리 알렸다. 또한 2010년에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베토벤 사이클을 진행하였다.

홈페이지 http://www.artsuwon.or.kr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1985331일 민간 교향악단으로 출범한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2001년 재단법인으로 탈바꿈하면서 예술의전당에 상주하고 있다. () 홍연택이 초대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맡은 이후, 바이올리니스트 김민 음악감독과 지휘자 박은성 이후, 2011년 최희준이 상임지휘자로 취임하여 악단을 이끌고 있다. 1987년부터 국립극장과 전속관현악단 계약을 맺어 국립오페라단·국립발레단·국립합창단의 반주를 맡아오며,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각종 연주회를 맡아 상주 단체로서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2008년부터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의 반주를 맡고 있으며, 연평균 90회 이상의 연주를 개최하고 있다. 다양한 기업음악회를 통해 기업 메세나 활동의 한 축을 담당하며 클래식 음악의 저변 확대에도 힘쓰고 있다.

홈페이지 http://www.koreansymphony.com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8846일에 창단된 부천 필은 부천시에 소속돼 부천시민회관을 상주 공연장 삼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창단 1년 후인 1989년에 지휘자로 자리해 현재까지 21년째 단원들과 동고동락하고 있는 상임지휘자 임헌정은 부천 필의 성장과 색깔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친 존재다. 이들은 쇤베르크·버르토크 등 20세기 작품을 국내 초연하고, 브람스·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를 펼치는 등의 참신한 레퍼토리로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국내 음악계에 자극을 주었다. 공연 횟수보다는 프로페셔널한 단체로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에 주력하는 부천 필은 1999년부터 2003년까지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회 시리즈를 펼쳐 국내 음악계에 말러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나아가 2007년부터는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시리즈에 도전하며 탁월한 음악적 기량을 펼쳐보였다.

홈페이지 http://www.bucheonphil.org

 

광주시립교향악단

광주시향은 1969년 창단된 광주시민교향악단을 모태로 한 관현악단으로, 1976년 초대 상임지휘자 장신덕의 취임과 함께 새롭게 창단되었다. 이후 이용일·니콜라이 디아디오우라·임평룡·김용윤·구자범 등으로 계보가 이어졌고, 현재 독일 쾰른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도 활동 중인 크리스티안 루드비히가 상임지휘자를 역임하고 있다. 광주시향은 광주광역시 소속 단체로, 광주문화예술회관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70회가 넘는 정기연주회와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를 비롯한 600회 이상의 특별공연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대중적인 작품으로 관객 저변 확대에도 주력하고 있으며, 문화소외계층 초청연주 등을 지속적으로 개최하는 한편, 20105.18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말러 교향곡 2부활을 우리말로 번역해 연주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홈페이지 http://www.gjart.net

 

부산시립교향악단

1962년 창단된 부산시향은 초대 상임지휘자 오태균 이후 한병함·이기홍·박종혁으로 수석지휘자의 자리가 이어지며 부산광역시의 대표적인 관현악단으로 성장했다. 1988년 부산문화회관 개관으로 전용 연습실과 공연장을 확보함으로써 전문 오케스트라의 형식적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국내 시립교향악단으로서는 최초로 외국인 지휘자 마크 고렌슈타인을 영입하며 국제적인 관현악 단체로의 성장 기반을 마련했으며 2009년부터는 리신차오를 새로운 수장으로 맞이해 전 시대를 아우르는 레퍼토리를 갖추고 있다. 부산을 대표하는 문화사절단으로서의 활동에도 주력하고 있는 부산시향은 1997년 미국 순회공연을 시작으로 동남아시아·중국 등 해외 공연을 개최했고, 매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리는 아시안 프렌들리 콘서트에도 참가하고 있다.

홈페이지 http://culture.busan.go.kr

 

 

강남 심포니 오케스트라

1997년 창단된 강남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서울 강남구에 소속된 구립 오케스트라로 현재 강남구민회관에 상주하고 있다. 서울시향만으로는 서울 전체에 문화적 혜택을 충분히 제공하기 어려운 현실을 개선하고, 지역 시민의 정서함양을 목적으로 창단됐으며 창단 이후 지금까지 서현석 지휘자가 상임으로 있다. 전체 연주회의 30~40퍼센트 정도가 강남구민을 위한 연주이며, 신년음악회를 통해 강남구민에게 새해 인사를 하고, 여름에는 양재천에서 팝스콘서트를 진행한다. 음반 활동에 적극적인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베토벤 교향곡 전집 음반과 브람스 교향곡 전집 음반을 녹음했다.

홈페이지 http://www.gfac.or.kr

 

 

 

경상북도립교향악단

경상북도에 소속된 경상북도립교향악단은 19979월 창단되었다. 이형근·신현길·이현세에 이어 현재 박성완이 상임지휘자로 활동 중이다. 경상북도립교향악단은 경상북도 23개 시·군을 중심으로 정기연주회·초청음악회·청소년음악회·신인음악회·기업방문음악회·위문음악회 등 연 평균 60여 회의 연주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중에서도 특히 미래의 클래식 관객들을 발굴하고 육성시키기 위해 기획한 미래를 위한 청소년 음악회에 큰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데, 주로 문화 혜택이 적은 읍면의 학교를 찾아가 아이들에게 생애 최초의 클래식 음악을 만나게 해준다는 점에서 학교와 지역민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홈페이지 http://www.gbart.or.kr

 

 

 

대구시립교향악단

196411월에 창단된 대구시립교향악단은 46년이란 긴 세월 동안 대구 지역의 음악 문화와 교향악 발전에 기여해왔다. 현재 대구문화예술회관의 상주 예술단체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해 평균 60회 이상의 연주회를 기획·진행하고 있다. 초대 상임지휘자였던 이기홍을 시작으로 우종억·강수일·박성완을 거쳐 러시아의 라빌 마르티노프와 폴란드의 보구슬라프 마데이, 그리고 미국의 박탕 조르다니아 등 외국인 지휘자를 영입해 러시아와 동구권 음악까지 레퍼토리를 확장했고, 8대 상임지휘자인 이현세에 이어 200810월부터는 곽승이 상임지휘를 맡고 있다.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레퍼토리를 자랑하는 대구시향의 주력 레퍼토리는 베토벤의 교향곡 5운명이다.

홈페이지 http://artcenter.daegu.go.kr

 

 

대전시립교향악단

1984년 창단된 대전시립교향악단은 2003년 대전문화예술의전당 개관과 함께 이곳 상주 단체로 자리 잡고 있다. 정두영 지휘자가 초대 상임을 맡은 후 안주용·금난새·함신익·에드몬 콜로메르·장윤성을 거쳐 현재 금노상이 상임지휘자로 재임 중이다. 특히 2001년부터 6년간 상임을 맡았던 함신익은 미국 순회연주 및 아시아 오케스트라 위크 등의 연주회를 통해 활동 범위를 세계 무대로 넓혔다. 아카데믹한 프로그램인 마스터스 시리즈를 통해 고전과 낭만시대를 넘어 스트라빈스키·말러·드뷔시·쇤베르크·바르토크·바레즈 등 20세기에서 21세기로 이어지는 다양한 작곡가들을 소개해왔으며, ‘유아들을 위한 EQ-UP 콘서트’ ‘장윤성의 음악교실등 기획연주를 통해 클래식의 대중화에도 힘써왔다.

홈페이지 http://dpo.artdj.kr

 

 

성남시립교향악단

성남시청 문화예술과에 소속된 성남시향은 20034월에 문을 연 젊은 오케스트라로 현재 성남아트센터에 상주하고 있다. 단체의 역사는 다소 짧지만 2천여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을 만큼 적극적인 움직임을 펼치고 있다. 창단 이후 4년 동안 재임한 주익성과 김봉의 뒤를 이어 임평용이 지휘를 맡고 있으며, 대표 레퍼토리는 모차르트 교향곡과 같은 고전 레퍼토리이다. 분당을 중심으로 문화적 욕구가 강한 청중이 성남시향 정기연주회의 주관객이며, 정기연주회와 기획 공연, 그리고 찾아가는 음악회·토요 미니 콘서트·스쿨 클래식 등 연간 50여회의 공연을 펼치고 있다.

홈페이지 http://www.sn-pac.or.kr

 

 

울산시립교향악단

울산의 문화창달과 시민들의 정서함양을 목적으로 1985년에 창단된 울산교향악단이 1990년에 울산시 산하의 교향악단으로 재편성되어 오늘날의 울산시립교향악단이 되었다. 초대 상임 지휘자 한병함을 거쳐 이후 상임지휘자로 신현석·강수일·박성완·유종·장윤성·이대욱이 활약했다. 산업도시로 유명한 울산지역의 대규모 공장을 방문하는 연주회를 비롯하여 가족음악회·시민을 위한 음악회 등 매년 30여 회의 연주회를 통해 울산시민들의 문화 향유에 이바지하고 있다. 1979년 도쿄 국제 지휘자 콩쿨에서 입상한 재일 한국인 지휘자 김홍재가 현재 상임지휘자로 악단을 이끌며 국내외로 활발히 순회연주회를 펼치고 있다.

홈페이지 http://www.ucac.or.kr

 

 

원주시립교향악단

1997년 창단된 원주시향은 원주시 소속 단체로, 현재 원주치악예술관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창단 당시 명예음악감독에 임헌정·수석객원지휘자로 정치용을 영입했고 현재 박영민이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원주시향은 베토벤·브람스 교향곡 시리즈와 함께 바르토크·브리튼 등 현대 작품, 그리고 오페라 라 보엠’ ‘마술피리등의 레퍼토리를 갖고 있다. 2009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와 대한민국국제음악제에 초청되는 등 원주 지역사회 홍보에 힘쓰는 동시에 일본 라 폴 주네 페스티벌 등에 초청되며 세계무대를 향해 도약하고 있는 악단이다.

홈페이지 http://wjphil.wonju.go.kr

 

 

인천시립교향악단

196661일 첫 연주회를 가지며 창단한 인천시립교향악단은 현재 인천광역시에 소속되어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을 상주 공연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김중석과 임원식·금노상·천줘황이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역임했으며 201010월부터 금난새가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맡고 있다. 아시아의 허브인 인천에 뿌리내리고 있는 단체로 연간 50여회의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방 순회연주와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청소년음악회·근로자를 위한 음악회·장애우를 위한 음악회·가곡과 아리아의 밤·신년음악회 등 다양한 연주회를 지속적으로 이어오며 인천 시민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인천시립교향악단이 가장 자신 있는 레퍼토리로 꼽는 작품은 브람스 교향곡 3·4, 차이코프스키 4·5·6, 그리고 쇼스타코비치 5번 등 연주회에서 가장 널리, 그리고 자주 연주되는 곡들이다.

홈페이지 http://www.artincheon.or.kr

 

전주시립교향악단

전주시립교향악단은 1975년 창단됐으며, 초대 상임지휘자 유영수를 시작으로 유봉헌·유영재·박태영·김용윤을 거쳐 2007년 이후 강석희가 음악감독 및 상임지휘자를 맡고 있다. 정기연주회·기획연주회·찾아가는 음악회 등 연 약 40여 회의 연주회를 가지고 있다. 전주시향은 음악의 수요층을 확대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단순한 강좌가 아닌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관객의 음악적 소양을 높이고자 힘쓰고 있으며, 음악회에 오지 않는 일반 대중이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노력한다.

홈페이지 http://art.jeonju.go.kr

 

 

제주도립교향악단

1985년에 제주시립교향악단의 명칭으로 창단되고 2008년에 제주도립교향악단으로 명칭이 변경된 제주도향은 고() 이선문 초대 지휘자에 이어 1998년 제2대 상임지휘자로 이동호가 취임한 이후 제주도를 거점으로 꾸준히 활동 중이다. 대부분의 단원들이 제주도 출신으로, 음악가와 제주도의 특산물인 귤농사를 겸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제주도향은 연평균 30회 이상의 정기연주회뿐만 아니라 제주국제관악제·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에도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제주 민요 및 교가의 음반을 제작·보급하며 지역사회 홍보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주요 레퍼토리는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 스메타나 연작 교향시다. 제주국제관악제의 영향으로 관악기 부문의 제반 여건이 비교적 탄탄한 편이다.

홈페이지 http://www.artjeju.or.kr

 

 

창원시립교향악단

창원시립교향악단은 경상남도를 대표하는 관현악단으로 김도기를 상임지휘자로 하여 1991년에 창단되었다. 2002년에는 창원시립예술단 산하의 악단으로 편입되었으며, 2대 상임지휘자 장윤성에 이어 3대 상임지휘자로 정치용이 취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창단 초기부터 쇤베르크·힌데미트·하차투리안·루토스와프스키 등 현대작곡가들의 작품을 의욕적으로 소개하며 초연을 해왔다. 특히 경상남도 통영의 출신의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다양한 교향곡과 실내악곡을 국내에 널리 알리며 명성을 쌓아왔다. 창원성산아트홀 대극장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창원시향은 현재도 통영국제음악제에 꾸준히 초청되어 다양한 곡들을 선보이고 있다.

홈페이지 http://www.changwonphil.com

 

 

창원시립마산교향악단

창원시립마산교향악단은 1975년 창단된 마산실내악단을 모체로 1984년 마산시립교향악단으로 재창단 되었으며 2010년 마산이 창원시로 통합됨에 따라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현재 마산 3.15아트센터에 상주하고 있으며, 안종배·이동호·조신욱·이동신 등의 지휘자를 거쳐 현재는 백진현이 상임지휘자로 활약하고 있다. 창원시립마산교향악단은 정기연주회를 비롯해 복지관·학교·양로원·병원 등 소외 지역을 방문하는 찾아가는 음악회와 교향악축제, 통영국제음악회 등 마산 및 경상남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한 연주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한편, 말러 교향곡 1거인을 가장 자신 있는 레퍼토리로 꼽고 있으며, 창단 25주년을 맞은 지난 2009년에는 시립교향악단으로는 드물게 오페라를 제작해 주목을 받았다.

홈페이지 http://artmasan.kr

 

청주시립교향악단

1973년 창단된 청주시향은 청주시청 소속으로 청주예술의전당을 상주 공연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초대 지휘자 이상덕 이후 이종명·신주연·금난새·장문학·조규진 등을 거쳐 현재 유광이 지휘봉을 잡고 있다. 정기연주회·기획연주회·방문연주회 등으로 매년 25~30회 무대에 선다. 라벨의 라 발스와 브람스 교향곡이 자신 있는 레퍼토리로 2009·2010년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에서 연주한바 있다. 청주시향은 상임화가 이뤄진 1995년에 입단한 상임 1세대단원들이 아직도 악단에 많이 남아 열정과 후배 단원들을 이끌며 전통을 쌓아가고 있다.

홈페이지 http://cjac.cjcity.net

 

춘천시립교향악단

1985년에 창단된 춘천시립교향악단은 이한돈을 1대 상임지휘자로 하여 이후 김윤식을 거쳐 2009년부터 백정현이 3대 상임지휘자로 취임하여 악단을 이끌고 있다. 강원도 내의 유망 신인과 청소년을 발굴하는 협주곡의 밤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 음악회영화음악 페스티벌등 강원도 내의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테마가 있는 연주회를 기획·실행하고 있다. 춘천시향이 상주하는 춘천은 한국에서 호수가 아름다운 호반을 자랑하는 도시다. 춘천시향은 이러한 자연환경에 걸맞는 춘천시의 다양한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강원도의 음악계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오고 있다.

홈페이지 http://www.ccart.kr

 

충남도립교향악단

충남도립교향악단은 1990년에 창단된 국내 최초의 도립교향악단으로 상임 지휘자 박종혁을 비롯하여 이병헌·장준근·김종덕을 거쳐 오늘날에는 매 공연마다 지휘자를 초빙하여 다양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정기연주회·특별기획연주회·순회연주회·찾아가는 음악회 등 연간 70~80회의 연주회를 갖는다. 홍성·논산·예산 등 충청남도의 16개의 시·군을 순회하며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가곡··오페라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연주한다. 충남도립교향악단은 베토벤에서 스트라빈스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이고 있다.

홈페이지 http://www.cpo.or.kr

 

 

포항시립교향악단

포항을 중심으로 한 민간악단이었던 포항관현악단과 포항교향악단을 합쳐 19903월에 창단되었다. 초대 상임지휘자인 이낙성 이후 2대 상임지휘자로 박성완이 10여 년 동안 악단을 이끌었다. 지방에 상주하는 관현악단으로는 보기 드물게 포항의 음악애호가들로 구성된 ‘(포항)시향을 사보하는 시민들의 모임이 포항시향을 지지하고 있다. 2008년에는 3대 상임지휘자로 유종이 취임하였고 현재 포항문화예술회관을 중심으로 활동중이다.

홈페이지 http://phart.ipohang.org

 

 

 

4장 한국의 음악 교육 인프라

서양음악이 유입된 이래 한국의 음악교육기관은 빠른 변화와 성장을 거듭하였다. 특히 각 대학의 음악대학은 양악과 국악의 인재 양성을 위한 교과과정을 설립해 각기 활발한 음악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는 100여 개의 음악대학이 개설돼 있다. 음악 전공학과를 갖고 있는 84개의 4년제 일반대학교, 음악교육과를 포함한 11개의 교육대학교, 여기에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같은 특수교육기관 등이 더해져 한국 음악교육의 역사를 이룬다.

 

한국의 주요 음악대학은 역사와 전통이 깊은 이화여대·연세대·한양대 등을 꼽을 수 있다. 1925년 한국 최초로 음악과를 설립한 이화여대는 1947년 피아노·관현악·성악·작곡으로 전공을 세분화해, 음악교육의 모체로서 기능하며 수많은 여성음악가를 배출하고 있다. 1885년에 개교한 연세대학교는 1955년에 신학대학 종교음악과로 시작해 1963년 음악대학을 인가를 받아 현재까지 교회음악과·성악과·기악과·작곡과·관현악과 등 5개 학과로 운영되고 있다. 1960년에 신설된 한양대학교 음악대학은 한국에서 유명 성악가를 배출한 학교로 유명하다. 한양대학교의 전신인 동아공과학원의 설립자 김연준은 한국의 유명한 작곡가이자, 성악가였기에 음악대학을 설립하면서 성악과에 강세를 두었다. 그런 까닭에 이후 배출된 졸업생들이 성악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이 외에도 서울지역에는 숙명여대·경희대 등 국내 음악계에서 수준 높은 교수진과 교육과정을 지닌 대학교들이 있다.

 

한편 각 지방에 위치한 국립대학 내 음악대학은 그 지역의 음악문화를 이끄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부산대·경남의 경상대·전북의 군산대·충남의 공주대·대전의 충남대 등을 꼽을 수 있다. 위와 같은 음악대학들은 대부분 기악과·성악과·작곡과·관현악과 그리고 한국의 전통음악을 공부하는 국악과로 나눠져 있다.

 

이중에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인을 배출하는 대학을 꼽으라면 서울에 위치한 국립서울대학교 내의 음악대학과 국립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을 꼽을 수 있다. 각 학교마다 음악을 중심으로 한 교육기관이지만 서울대학교는 국가의 교육정책을 담당하는 교육과학기술부 소속이고 한국예술종합학교는 국가의 문화정책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의 산하교육기관이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은 약 반세기 동안 한국의 음악교육을 담당해오고 있으며 오래된 전통을 자랑한다. 이에 반해 1993년에 설립된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은 국제적인 음악교육의 조류를 따라가며, 영재발굴과 지원시스템의 강화에 힘쓰고 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은 약 반세기 동안 한국의 음악교육을 담당해오고 있으며 오래된 전통을 자랑한다. 이에 반해 1993년에 설립된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은 국제적인 음악교육의 조류를 따라가며, 영재발굴과 지원시스템의 강화에 힘쓰고 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은 1945년에 성악가이자 작곡가였던 고 현제명 박사에 의하여 경성음악학교로 설립되어 오늘날까지 그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음악대학이다. 1946년에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내 음악부로 승격되어 개편되었고, 1953년 국립서울대학교 음악대학으로 독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설립초기부터 성악과·작곡과·기악과 3개의 과로 운영되어 오던 중 1959년에 국악 기악전공과 국악작곡이론전공으로 구성된 국악과가 신설되었다. 1981년 작곡과 내에 작곡전공과 이론전공이, 1982년에는 기악과 내에 피아노·현악·관악별로 전공이 분리되어 신설되었다.

각 과마다 재학생들의 역량을 기르기 위한 다양한 교과과정이 있다. 성악과는 오페라 워크샵과 격년제로 정기오페라를 무대에 올린다. 작곡과는 작곡·이론·지휘 전공으로 세분화되어 여타 대학과는 달리 전문적인 작곡가·음악학자 및 비평가·지휘자의 배출에 힘쏟고 있다. 기악과는 다양한 이론수업은 물론 연주수업, 춘추계 음악회 등 다양한 연주기회를 통해 전문 연주자로서의 기초를 다지고 있다. 매 학기 기획되는 해외초청교수 마스터클래스를 제공하며 반주를 비롯한 실내악 앙상블 수업을 필수적으로 이수하도록 하고 있다. 국악과는 매년 개최하는 정기연주회에 촉망받는 작곡가들에게 창작곡을 위촉하여 연주함으로써 창작국악곡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또한 음악대학 내에 동양음악연구소·서양음악연구소·오페라연구소를 부설기관으로 두어 국내외 저명 음악학자들과의 국제학술회의를 통해 다양한 연구사업을 추진하며 정기간행 학술지 및 연구소 총서를 발간하며 다양한 음악교육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의 자랑은 우수한 교수진과 오랜 역사 속에서 배출된 동문들의 세계적인 활약에 있다. 베이스 연광철과 강병운을 비롯하여 7명의 성악과 교수진이, 작곡·이론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7명의 작곡가와 음악학자, 부천필하모닉 상임지휘자 임헌정이 작곡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기악과에는 바이올니스트 김영욱·백주영·이경선, 피아니스트 최희연·박종화·레이하르트 아비람, 플루티스트 윤혜리 외 10명의 교수진이 재직중이다. 국악과에는 거문고·가야금·대금·해금·국악작곡 및 민족음악학 전공별로 전통예술분야의 인간문화재급에 해당되는 7명의 교수가 재직중이다.

5,270명에 달하는 졸업생들의 활동은 한국음악계의 활동을 대변하고 있으며 국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음악가들은 대부분 본교와 연관을 가지고 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출신들 중에 이 책의 한국의 연주자에 소개되는 이들이 많다. 작곡가 이신우·진은숙, 성악가 조수미·서예리·박지민·박종민, 호르니스트 김홍박, 리코더니스트 권민석, 서울바로크합주단의 리더 김민 등이 본교 출신으로 활발히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1993년 대통령령에 따른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개교와 함께 개원한 음악원은 순수 국내파 출신의 세계적인 음악가를 양성하고자, 아울러 세계최고의 음악교육기관을 지향하는, 국내 유일의 실기 중심 콘서바토리 형태의 국립 음악전문교육기관이다. 성악과·기악과·작곡과·지휘과·음악학과 이상 5개의 학과로 구성되어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특징으로는 우수한 교수진과 여타 대학과는 차이를 두고 있는 교과과정이다.

성악과에는 바리톤 최현수 등 7명의 교수진이, 기악과에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이성주, 첼리스트 정명화, 피아니스트 강충모·김대진 등 14명의 교수진이 있다. 기악과 교수들은 본지의 한국의 연주자에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는 한국을 대표하는 연주자들이기도 하다. 작곡과에는 2대 총장을 역임한 이건용을 비롯하여 4명의 교수진이, 지휘과에는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정치용외 1명의 교수진이 있다. 음악학과에는 초대총장을 역임한 음악학자 이강숙이 초빙교수로 재직중이며 그 외 3명의 교수진이 있다.

음악원의 교육과정 운영은 크게 전공 심화·이론·융합 교육으로 나뉘져있으며 동시에 삼위일체를 이루는 음악원만의 독특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전공 심화 교육 프로그램으로는 전공실기·마스터 클래스·실내악·특강·연주 등이 개설되어 있다. 이러한 전공 실기를 강화시켜 주는 이론교육(음악학 전공의 경우 실기 교육)으로, 음악문법·시창청음·악곡분석·음악사 등이 개설되어 있다. 융합 교육 프로그램은 변화하는 음악적 환경에 걸맞게 창의적 사고와 연주력를 유도하는 다양한 과목을 개발하여 실행하고 있다. 여타의 음악대학과는 달리 1학년부터 바로 전공심화과정에 들어가고 개인레슨 위주인 전공실기와 여러 교수와 학생이 함께 만나 공개적인 방식으로 전공실기교육을 행하는 전공별 워크샵이 있다. 앙상블에도 중점을 두어 실내악·합창·합주를 필수과목으로 지정되어 있는 것도 음악원만의 특징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만의 자랑은 뛰어난 영재발굴과 그 뒤에 이어지는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에 있다. 개원 당시부터 운영되며 예술영재를 조기 발굴·양성하기 위하여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1년제 교육과정으로 음악원의 예비학교에 해당되었던 예술실기연수과정2008년부터 부설기관인 한국예술영재교육원으로 통합·발전되어 심화되어 운영되고 있다. 본지의 한국의 연주자에 소개되는 피아니스트 임동혁·임동민 형제를 비롯하여 피아니스트 김선욱·손열음·김다솔·임효선, 바이올리니스트 한빈·클라라 주미 강·권혁주·신현수·최예은, 더블베이시스트 성민제 등이 위와 같은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예비학교와 예술사(타 대학의 학사과정에 준함) 출신으로 현재 세계 곳곳에서 음악적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5장 한국의 공연장

 

예술의전당

한국 최대의 문화복합공간인 예술의전당은 명실공히 한국 공연 예술의 메카로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서울시 서초동 우면산 기슭에 자리한 예술의전당은 1982년 착공되어 1993 대형복합문화공간으로 완공됐다. 이중 공연장 시설은 크게 음악당과 오페라하우스로 구분된다. 음악당의 클래식 음악 전용홀인 콘서트홀은 2,600석의 규모에 무대막이 없는 아레나형으로 객석의 시청각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를 띠고 있다. 또한 클래식 실내악 전용홀인 리사이틀홀은 3개 층의 400석 규모로 독주회·실내악 등 위주의 공연으로 채워진다. 2,340석 규모의 오페라하우스는 오페라·발레·뮤지컬 등의 대형공연이 주를 이루며, 무용·연극이 공연되는 710석의 토월극장, 300~600석으로 변화 가능한 입체적인 무대의 자유소극장 등의 시설이 함께 포진되어 있다. 한편 201110월에는 600석 규모의 실내악 전용 공연장 IBK챔버홀을 개관하며 실내악 연주의 화려한 부흥에 박차를 가했다. 그동안 음악당에는 유리 테미르카노프가 이끄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 로린 마젤이 이끄는 뉴욕 필,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가 이끄는 시드니 심포니, 다니엘 바렌보임이 이끄는 서동시집 오케스트라 등 세계 유수의 연주단체와 로스트로포비치·미하일 플레트뇨프·레온 플라이셔·유리 바시메트 등 세계 정상급 아티스트들이 무대에 올라 주옥같은 선율을 들려주며, 한국 클래식 음악의 시야를 확장해 놓았다. 나아가 예술의전당은 1989년부터 개최되고 있는 교향악축제를 필두로 서울과 지방간의 음악의 벽을 허무는 과감한 시도와 전문 교향악단의 양산을 이루며 한국 클래식 음악의 양적·질적 성장에 큰 기여를 이루어 왔다. 상주단체로는 국립발레단·국립오페라단·국립합창단을 두고 있으며, 국립현대무용단·코리안 심포니·서울예술단 등이 입주기관으로 활약하며 꾸준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다. 개관 20주년을 맞아 예술의전당이 발표한 2008년 통계에 따르면 그간 예술의전당에는 12367건의 공연이 펼쳐졌으며, 2780만 명의 관람객이 공연장을 다녀가, 한국의 대표 공연장으로서의 위력을 입증하기도 했다.

주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 예술의전당

홈페이지 http://www.sac.or.kr

 

세종문화회관

세종문화회관은 서울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개관된 공연장인 만큼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 위치해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다. 한국 문화예술의 산실로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세종문화회관은 1961년 그 전신인 우남회관으로 출발해 1972년 화재로 소실된 서울시민회관의 뒤를 이어, 1978년 동양최대의 공연장으로 세계의 이목을 끌며 지금의 위치에 개관하였다. 공연 인프라가 협소했던 1970~1990년대에는 한국 문화예술을 이끄는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후 2003~2004년 시설 개보수 공사를 진행하며 최첨단 시스템의 구비를 갖추며 세계화를 위한 도약을 이루었다. 3층으로 이루어진 세종대극장은 3,022석 규모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수용하는 멀티시스템 공연장이다. 국내 최초로 LCD 모니터를 1·2층 객석 의자와 3층 벽면에 부착해 공연자막과 동영상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는 점이 특기할 만하며, 1978년 설치된 898개의 파이프를 가진 동양최대의 파이프 오르간이 구비되어 있는 점도 색다른 볼거리다. 2006년 개관된 실내악 전문홀인 세종체임버홀은 2398석 규모로 벽면에 음원을 반사시켜 공간 내부에 울리도록 하는 신공법 건축을 도입해 실내악·독주회·독창회 등에 적합한 최적의 음향시설을 갖추고 있다. 사이먼 래틀이 이끄는 베를린 필, 주빈 메타가 이끄는 이스라엘 필, 에사 페카 살로넨가 이끄는 LA 필 등 세계적인 명성의 악단들이 내한 공연을 펼친 바 있으며, 테너 호세 카레라스, 오르가니스트 켄 코완 등이 무대에 올라 다채로운 무대를 선사했다. 현재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시국악관현악단·서울시무용단·서울시합창단 등 9개의 산하단체를 두고 있다. 나아가 이들을 중심으로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무료 공연 함께해요! 나눔예술’, 입장료 1000원으로 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하는 천원의 행복등 문화를 통한 사회공헌활동을 다양하게 진행하여 한국 문화예술의 대중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81-3 세종문화회관

홈페이지 http://www.sejongpac.or.kr

 

LG아트센터

LG아트센터는 IT산업의 발전으로 한국의 경제적 요지로 부상한 서울 역삼동 테헤란로에 위치한 첨단문명 속 문화예술의 요람이다. 2000년 개관당시 통유리로 된 도시적인 느낌의 인테리어와 첨단 장비 도입으로 화제를 일으켰으며, 3층 총 1,103석 규모로 다목적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하며 클래식·무용·연극 등을 두루 수용하고 있다. 높은 천장과 탁 트인 구조로 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있는 LG아트센터는 극장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미국무대기술협회(USITT)가 뽑은 2001년 올해의 극장에 국내 최초로 선정되기도 했다. 국내 최초로 채택한 가변형 잔향 조절 시스템과 소음 방지를 위한 첨단 건축 구조 분리 공법 등을 도입하여 도심 속 극장이 가진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한 이상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LG아트센터는 그 동안 고음악계의 거장 조르디 사발에서부터 현대음악의 선구자 필립 글라스 등 폭넓은 영역의 세계적인 아티스트를 초청하며 공연예술의 선진화에 앞장서왔다. LG아트센터는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현대음악, 3세계 음악 등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작품들을 직접 소개하며 다른 공연장과 차별화된 레퍼토리를 통해 한국 관객들에게 새로운 문화 향유의 기회를 꾸준히 제공해왔다. 그 예로 재즈 기타리스트 팻 메스니가 이끄는 팻 메스니 그룹, 쿠반 재즈의 대표주자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파격적인 안무의 백조의 호수로 유명한 안무가 매튜 본, 독일 출신 안무가 피나 바우쉬 등의 무대를 들 수 있다. 나아가 역량 있는 우수 아티스트를 발굴해 꾸준히 소개하고, 국내외 예술 단체와 공동으로 작품 제작 사업을 활발히 진행하는 등 레퍼토리 개발에도 힘쓰며 한국 문화 예술계에 신선한 숨을 불어 넣고 있다.

주소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679 LG아트센터

홈페이지 http://www.lgart.com

 

주목해야 할 한국의 주요 공연장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금호아트홀은 전문 실내악 연주장으로 한국 클래식 음악의 새로운 메카로 기능하고 있다. 390석 규모로 2000년 완공된 금호아트홀은 매주 5회 이상의 독주 및 실내악 무대를 펼치고 있다. 금호아트홀의 대표적인 레퍼토리로 지난 10년 간 매주 공연되어 온 아름다운 목요일 시리즈에는 강동석·김대진·정명화 등 한국 대표 연주자 뿐 아니라 하인츠 홀리거·이고르 오짐·미리암 프리드 등 해외 거장들이 무대에 올라 자리를 빛냈다.

나아가 수도권 인근에는 양질의 공연을 선사하는 성남아트센터와 고양아람누리가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다. 성남시에 위치한 성남아트센터는 994석 규모의 콘서트홀, 1804석 규모의 오페라하우스 등을 두루 갖춘 대규모 복합문화시설이다. 2005년 개관하며 길버트 카플란의 첫 내한 공연을 시작으로 기존 공연장과의 차별화를 위해 이반 피셔와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 독창회 등 그동안 한국에 소개되지 않는 초연작을 단독 공연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2007년 개관한 고양아람누리는 1,887석 규모의 아람극장, 1,449석 규모의 아람음악당 등의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아람극장은 114개의 스피커를 통해 전객석이 고른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했고, 아람음악당은 마이크 없이 최적의 자연음을 전달할 수 있는 슈박스 구조로 설계되어 유럽 유수 극장들에 비견될만한 최상의 시스템을 자랑한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성토마스 합창단,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 등 세계 정상급 아티스트들이 이들 무대에 올랐다.

한편 세계를 향해 도약하는 한국 지역 페스티벌의 주요 공연장들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대구오페라하우스는 2003년 창작오페라 목화를 공연하며 개관하였다. 제일모직이 기업메세나의 일환으로 대구시민에게 기증한 대구오페라하우스는 4, 1,490석 규모를 자랑한다. 한국 최초의 오페라전문극장으로 문을 열었으며 개관 이후 매년 가을 대구국제오페라축제를 개최해 시민들의 문화 향유를 도모하고 있다. 매년 가을 음악·오페라를 중심으로 한 대전그랜드페스티벌을 펼치는 대전문화예술의전당은 1,546석 규모에 120여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을 수용하는 무대를 가진 아트홀, 630석의 앙상블홀 등을 구성하며 2003년 개관했다. 이 공연장은 뉴욕 필, 베를린 필 등 유수 단체 초청을 통해 지역 관객들의 문화 향유를 이끄는 역할을 일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중심에 있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은 32,037석 규모의 다목적 공연장 모악당, 666석 규모의 연지홀, 206석 규모의 명인홀 등을 보유하며 전통 창극에서부터 양악, 오페라,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펼치며 지역 문화 예술의 발전에 큰 힘을 실어주고 있다.

 

금호아트홀

주소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 157번지 금호아시아나 13

홈페이지 http://www.kumhoarthall.com

 

성남아트센터

주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성남대로 808 성남아트센터

홈페이지 http://www.kumhoarthall.com

 

고양아람누리

주소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동 816 고양아람누리

홈페이지 http://www.artgy.or.kr

 

대구오페라하우스

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15 대구오페라하우스

홈페이지 http://www.daeguoperahouse.org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주소 대전광역시 서구 둔산대로 135 대전문화예술의전당

홈페이지 http://www.djac.or.kr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주소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소리로 31 한국소리문화의전당

홈페이지 http://www.sori21.co.kr

 

 

 

 

 

 

 

에필로그

2005,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사무총장 미셸 에티엔 반 네스테가 한국을 찾았습니다. 도대체 어떤 식으로 음악 교육이 이뤄지기에 그렇게 많은 한국인 연주자들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문을 두드리는지, 그것이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한국을 찾았던 2005년 퀸 엘리자베스 바이올린 콩쿠르에는 전세계 37개 국가, 133명 연주자가 참가했는데 한국은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를 벨기에로 보냈다고 합니다. 이쯤 되니 네스테 사무총장도 가만 있을 수 없었고, 그는 2005127일부터 4일간 직접 서울을 돌며 한국 음악교육계를 둘러봤습니다. 테크닉의 완성도가 뛰어나고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유난히 진지한 한국의 젊은이들. 그들이 땀 흘렸던 현장을 둘러본 후 그는 벨기에에 돌아가 서울에서의 경험을 동료들과 나누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 책의 원고를 거의 다 집필해갈 때 즈음인 201111, 벨기에 공영방송인 RTBF가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을 집중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서울에 위치한 한국예술종합예술학교 음악원을 찾았습니다. 다큐멘터리의 제작팀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두각을 보여온 한국의 젊은이들이 과연 어떤 환경에서 음악을 공부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직접 서울을 찾았다고 합니다. 6년 전 반 네스테 사무총장의 이야기가 현실로 이뤄진 순간이었습니다.

지금 현재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가 주목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젊은 연주자들의 세계적인 콩쿠르 수상 덕입니다. 콩쿠르라는 음악의 올림픽은 순기능과 역기능을 동시에 갖고 있지만, 젊고 유능한 새로운 얼굴의 등용문이라는 점에서는 음악계의 필요악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한편 한국의 젊은이들이 콩쿠르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클래식 음악계가 젊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의 문화가 이동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아시아로 이동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하나의 중심축을 벗어나 다각도로 이동한다고도 말합니다. 젊은 연주자, 젊은 청중을 보유한 한국은 지금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또 하나의 이동 축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분들이, 젊고 활기찬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으면 합니다. 또 하나의 새로운 중심, 그 등장을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